국가대표 수영선수였는데 이젠 인턴해녀, “숨 참는 게 가장 어렵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윤미연 전 국가대표 수영코치

24일, 서귀포시 검은여 해안에서 물질 교육이 한창이다. 70을 넘긴 베테랑 해녀 두 명이 인턴해녀 두 명을 놓고 물질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대일로 해녀복 착용법, 입수 방법, 호흡법, 해산물 채취 요령, 테왁 잡는 요령 등 해녀 활동에 필요한 기본 요령을 알려준다. 젊은 해녀들은 의욕이 앞서 허둥대다가 오리발이 벗겨지기도 하고, 테왁을 놓치기도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얼굴에 진지함이 떠나지 않는다.



이날 물질을 배우는 사람들은 법환해녀학교에서 기본교육을 이수하고 해녀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토평어촌계에 가입을 신청하고, 8일 과정의 인턴교육을 이수하는 중이다. 그런데 두 명의 인턴해녀 가운데 한 명이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이자 지도자였던 윤미연 코치다. 30년 넘게 물과 함께 생활했던 수영인이, 다시 더 넓은 물을 보고자 제주도에 왔다.


▲ 해녀 인턴교육을 받는 윤미연 코치(사진=정병욱)

윤미연 전 국가대표 코치는 부산시가 자랑하는 수영인이다. 부산 사직여고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수영 경영 종목에서 국내에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대 활약했고, 5년 연속 전국체전 4관왕에 오르는 등 발군의 기량을 자랑했다. 그동안 전국체전에서 딴 금메달만 30개가 넘어, 부산시 체육회에서는 보배로 인정을 받았다. 국가대표 수영(경영) 코치로 발탁돼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과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는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윤미연 코치는 대학교 강의를 하는 와중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해녀교육을 받았다. 법환해녀학교(교장 고승철)에 입학해 부산과 제주도를 오가며 10주간의 교육을 이수했다.

해교학교에 입학한 계기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가 바닷가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본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해녀들이 오렌지 색 테왁에 의지해 물질을 하는 장면을 본 뒤에, 제주도의 바다 속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 낭만적인 상상이 그를 해녀학교로 이끈 것이다.


▲ 문섬이 내다보이는 바다에서 인턴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요령을 배우고 있다.(사진=장태욱)

서귀포시 법환해녀학교는 올해 초에 해녀학교 입학생을 모집하고 5월 18일 제10기 직업해녀 양성과정을 시작했다. 교육은 10주(86시간) 과정이고, 교육을 수료하면 어촌계에 들어가 8일간 전문 해녀의 지도 아래 인턴교육을 받는다.

이번 인턴교육을 맡은 강사는 토평어촌계 박복자(70) 계장과 김복선(80) 해녀회장이다. 이들은 어촌계에 젊은 인턴해녀가 두 명이나 가입 의사를 밝은 것에 대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박복자 어촌계장은 “인턴해녀 두 명이 정말 잘 한다. 해녀를 하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해녀 일에 적응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복선 해녀회장도 “정말 인사도 잘하고 애교도 좋은데, 바다에 적응도 잘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물속에서 너무 빨리 이동하려 하면 물건(해산물)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마음을 침착하게 먹고 속도를 낮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 사수인 김복선 해녀회장으로부터 그간 살아온 얘기를 듣는 장면(사진=정병욱)

베테랑 해녀들의 평가는 긍정적인데, 역시 초보는 초보다. 윤미연 코치는 바닷물에 입수하기 전 착용하던 오리발이 발에서 빠져 떠내려가기도 했고, 테왁을 놓쳐서 허둥대기도 했다. 수영과 물질은 물속에서 하는 활동이라는 점 말고도 전혀 다른 영역이다.

윤미연 코치는 “일단 해녀복이 수영복과는 전혀 다르다. 해녀복은 수영복에 비해 너무 두껍다.”라며 “수영하는 도중에도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호흡이다. 수영에선 입으로 공기를 마시고 코로 내뱉는 호흡을 하는데, 물질은 숨을 참아야 한다. 해녀 삼촌들이 코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라며 “처음엔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윤 코치는 “해녀들에겐 자신들이 해서 자신만이 얻을 수 있는 진실한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게 좋았다.”라고 말했다.
<계속>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