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프다면 현대 미디어가 조장한 허상 때문, 그럼 해법은?
[북 리뷰] 에바 일루즈. 김희상 옮김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돌베개, 2013)
부부이던 연인이던 커플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하고 묻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의 사랑의 서사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특히 첫 만남의 순간이나 사랑의 굴곡의 순간들을 맛깔나게 이야기할 줄 아는 화자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러브 스토리라면 더욱 더.
심리학에서 분석하는 사랑도 아니고, 자기계발서에서 알려주는 사랑에 대한 훈수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라니... 제목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은가?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에서 ‘사랑’의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며 에바 일루즈는 이를 감정사회학이라 이름 붙인다.
“이성애의 낭만적 사랑은 20세기에 일어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혁명을 포괄한다. 하나는 생활방식의 철저한 개인주의화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신의 감정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사회관계의 경제화로 자아와 심지어 그 감정을 꾸미는 일까지 경제모델이 장악했음을 뜻한다 ··· 이는 자본주의 문화와 문법이 권력을 가지고 이성애라는 낭만적 관계의 영역으로 침투해 장악한 결과다.”(p.25.『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일루즈가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의 1장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영국의 19세기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인 『오만과 편견』, 『설득』등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근대에서의 결혼이란 주로 계층과 계급 안에서 이루어지던 동질혼이었다. 그러나 ‘성정체성이 맞부딪치며 권력을 놓고 싸우는 각축장’(p.24)이 되어버린 현대의 결혼, 연애 시장은 자본주의의 침투아래 더 방대해지고 복잡해졌다.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이미지들의 범람에 익숙해졌기에, 자신의 외모 가꾸기, 몸매 가꾸기 등에 더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현대의 개인은 감정적인 동시에 경제적이며, 소설을 읽으며 낭만을 즐기는 동시에 계산적’(p.26)이 된다. 신분상승의 새로운 기준이 ‘성적 매력’이 되어 버리며 선택의 양식이 바뀌었다.'(p.115)라고 일루즈는 말한다.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에서도 인터넷 로맨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저서인 『감정 자본주의.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3장에서 일루즈는 인터넷에서의 로맨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다.
“로맨틱한 사랑에서는 사랑의 대상이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고 가정되는 때가 많다. 곧 배타성은 로맨틱한 열정을 지배해온 희소경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반면에 인터넷의 취지라고 하면, 풍요경제, 교환성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곧 인터넷데이트는 풍요경제 위에 기초하는 대량소비의 원칙들 - 끝없는 선택, 효율성, 합리화, 목표설정, 규격화 -을 로맨틱한 만남의 영역에 도입했다.”(p.173. 에바 일루즈. 김정아 옮김. 『감정 자본주의.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돌베개. 2010.)
인터넷은 ‘상상과 구체적인 만남을 따로 떼어놓았다.’(p.441.『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라고 일루즈는 말한다.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는 사랑은 점점 더 ’상상력 덕분에 떠올릴 수 있는 대상에 매달렸고, 이 상상으로 그려진 허상만을 사랑으로 착각‘(p.386.『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한다는 것이다. 짝을 찾는 사람들은 노골적인 경쟁 시장으로 내 몰리며, 인터넷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전시된 자아는 ’공적으로 전시되는 상품‘(p.155.『감정 자본주의.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 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현대인의 사랑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했으며, 인터넷에서 수많은 상대들을 검색하고 접촉하지만, ’현실과 기대 사이의 괴리가 더욱더 커지고 있다는 점‘(p.416.『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을 일루즈는 지적한다. ‘욕구와 상상력과 현실 사이의 결합을 이뤄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에’(p.447.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높아진 기대치와 현실의 선택 사이에서 좌절을 맛보는 일이 반복된다고 일루즈는 말한다.
‘열정과 같은 밀도 높은 감정의 상실은 문화적으로 아주 심각한 손실이며 … 사랑하는 사람과 격정적으로 맺어지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기에’(p.471), 일루즈는 사랑에 필요한 새로운 형식이라 부제를 붙인 에필로그에서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으로의 회귀를 지지한다. ‘강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남녀가 똑같이 누리는 능력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 성평등의 목표’(p.471)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계와 감정으로부터 의미를 길어낼 줄 아는 능력은, 내가 보기에 자아 전체를 요구하며 자신을 완전히 잊을 만큼 헌신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만남에서 찾아볼 수 있다.”(p.472)
"이런 종류의 사랑은 성격을 강인하게 키워주며, 궁극적으로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나침반을 손에 쥐어주는 유일한 사랑이다"(p.472)
"밀도 높은 감정을 맛보는 열정적 사랑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중요한지 알아볼 혜안을 뜨게 해 준다."(p.473)
미국, 서유럽,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분석한 사례들 중에는 한국적 현실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사례들도 존재한다. ‘사랑’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책이 집필된 시점에서 급격히 변모했다.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로맨스 스캠, 데이트 폭력,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폭력 등의 문제들이『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에서 확장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사회학 서적인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을 읽는 것이 선뜻 엄두가 안 난다면 먼저 EBS의 '위대한 수업“에서 에바 일루즈의 ‘사랑의 정치학’ 강의를 다시보기로 시청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각 20분 분량으로 5회로 진행된 2022년 EBS 강의에서 일루즈 본인이 자신의 저서에 대하여 쉽게 설명한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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