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나는 곳에 풍미, 불 옆에선 누구나 친구’

[신간] 박진배의 『낭만 식당』(효형출판, 2024)

20대에 외국을 오가는 일을 했다. 독특한 경험이 많았는데, 1994년 1월, 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City of Fort Lauderdale)로 가던 날을 잊지 못한다. 만 하루를 비행기에서 보낸 후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로 겨우 배를 채우는데, 요리사가 조리복을 입고 홀에 나타났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더니, 재즈 음악 한 곡을 멋지게 연주했다. 24시간 넘게 잠도 못자고 왔는데, 그 연주를 듣는 순간 피로가 가시는 걸 느꼈다. 레스토랑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었다.

박진배의 『낭만 식당』(효형출판, 2024)는 그런 걸 얘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 레스토랑은 하나의 멋진 무대이자 ‘인생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담긴 그릇, 레스토랑에서의 예술적 체험은 방문객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다는 말이다.

▲ 책의 표지


본문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장(미식기의 여정)에선 해외 레스토랑 답사 장소 가운데 부르고뉴, 런던 리츠,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아르헨티나 멘도자, 뉴욕의 청혼 레스토랑, 암스테르담 팬케이크 등 인상에 남는 곳을 몇 군데를 소개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맛, 사람, 문화)엔 음식 자체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햄버거와 피자, 베이글, 치킨 와플, 중국의 회전 테이블 등 잘 알려진 음식문화의 탄생과 의미를 설명한다.

도시와 음식에 대한 소개 가운데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이 흥미롭다. 산 세바스티안은 스페인 바스크의 빌바오 인근에 있어서 여행객이 많이 찾는다. 이 도시에 '아사도르 에체바리’라는 독특한 레스토랑이 있다. 주인장이자 주방장인 빅트로 아르긴소니스는 1990년 농촌에 비어 있는 헛간을 구입한 후 개조해 레스토랑을 열었다.

손님이 찾으면 와인과 함께 염소 버터, 석화, 닭새우, 해삼, 농어 턱살, 거북손, 새끼 양의 겨드랑이 살 등 코스요리가 순서대로 나온다. 재료는 불과 열, 연기로만 구워내고, 소스도 연출도 없다. 해물은 참나무로, 고기는 포도 수확 후 남은 넝쿨로 굽는다. 가식 없는 풍미와 완벽함, 그 속에 주인장의 영혼이 담겼다.

아르헨티나는 소가 사람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쇠고기가 풍부하고 씹는 맛과 풍미가 좋기로 유명하다. 아사도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는 가장 일반적인 요리법이다. 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뿌려 숯불에 구워내는 요리인데, 남미 다른 나라에도 있는 요리법이다.

아르헨티나 멘도자에는 작은 포도밭이 있는데, 포도밭에서 일과가 끝나면 아사도가 시작된다. 거기에 와인은 필수다. 정육점에서 싱싱한 고기를 사고,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숯 위에 양지, 토시, 갈비, 곱창 등을 펼쳐 천천히 익혀낸다. 인접한 곳에 있는 자연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과정, 아사도는 일종의 사회적 의식(儀式)이다.

“연기가 나는 곳에 풍미가 있다.”라거나 “불 옆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라는 아르헨티나 속담은 아사도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담겼다.


▲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를 담은 사진


음식의 유래에 대한 대목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피자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화덕 파이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1889년 마르게리타 여왕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방문하자, 라파엘레 에스포지토 셰프가 토마토소스에 모차렐라 치즈와 바질을 얹어 파이를 구웠다. 16년 후에 뉴욕엔 첫 피자집 롬바르디스가 물을 열었다. 피자가 미국에 상륙한 것인데, 가게는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 길로 피자는 미국 전역에 퍼졌고 결국은 글로벌 음식으로 발전했다.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바비큐는 일반적으로 통째로 구운 고기 요리를 뜻한다. 낮은 온도의 열을 오래 가해 훈연 효과를 주며 천천히 요리를 완성한다. 야구, 재즈, 청바지와 함께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한다.

바비큐의 원조는 나무 꼬챙이에 고기를 꽂아 구워먹던 원주민 음식이다. 여기게 착안해 만든 게 바비큐인데, 쉬운 요리법 때문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30년대 포드 자동차가 피크닉을 강조하면서 바비큐 붐이 일었고, 결국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텍사스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캔자스시티는 미국 바비큐 3대 성지에 꼽힌다. 바비큐에 사용하는 고기 부위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데, 지역민이 자부심은 모두 대단하다. “미국인들은 마당에 눈만 녹으면 바비큐를 준비한다.”는 말이 있다. 바비큐에는 자연과 교감하는 아웃도어 정신, 가족·이웃과 어울리는 인간적인 정신이 있다.

우리나라에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TV와 유튜브에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음식의 요리법과 맛에만 관심을 갖고는 우리 음식문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없다고 진단했다.

책의 ‘마치며’ 부분에 중국요리와 영국요리를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중국음식은 맛은 좋은데 서비스가 불친절해서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국 음식은 맛은 별로지만, 빈틈없는 서비스로 레스토랑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고객 매너에서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러내는 지적도 있다. 뉴욕 레스토랑 업계 통계에 레스토랑에서 가장 시끄럽게 떠들고 다른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 1위에 중국인이, 2위에 한국인이 차지했다는 것. 이제 음식의 맛과 양을 충족했으니 외식문화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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