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 그 마비된 사회에 던지는 파문

[북 리뷰] 클레이 키건 저 · 홍한별 역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 2023)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마치 우리사회의 부조리에 관한 것처럼 익숙하다. 1980년대 형제복지원과 이후 자주 보도된 ‘염전 노예’에 분노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인이면 작품을 읽는 동안 데자뷰가 반복될 만하다. 인간으로 남고자 열린사회를 향해 내딛는 주인공의 선택은 80년대 밀폐된 사회에 균열을 내기위해 내던져진 우리네 청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아일랜드, 유럽의 섬나라인데 한국과 비슷한 역사와 정서를 간직한 나라다. 팽창 욕망에 가득 찬 나라를 이웃에 두고 있어 오랜 세월 침략과 지배에 시달렸다. 2차 대전 이후에야 독립을 달성했고, 영토는 남과 북으로 분단됐다.


▲ 책의 표지
아일랜드는 영국의 오랜 압박과 정치적 부패, 감자 대 기근에 따른 경제적 빈곤,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이민 열풍 등 대혼란을 겪었다. 그 와중에도 가톨릭교회는 부패한 정치와 결탁해 이권을 챙기기에 바빴다. 교회는 타락했고, 밀폐되고 마비된 사회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그런 사회상은 아일랜드 여러 작가의 작품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 도덕사의 한 장을 써 보겠다는 것이었고 그 무대로 더블린을 선정한 것은 이 도시야말로 내게 마비의 중심지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1914년, 단편집 『더블린사람들』을 출간하면서 출판사에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편지에 나타나듯 아일랜드는 마비된 사회였다.

클레이 키건(Claire Keegan)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역시 아일랜드의 마비된 사회상을 반영한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권력과 결탁해 남긴 치욕적인 유산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빌과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살았다. 빌의 어머니도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아일랜드 정부의 손아귀에 잡혀 수녀원의 탈을 쓴 막달레나 세탁소에 수용되어 학대를 당했을 것이다. 

빌은 석탄을 보관하고 배달하는 일을 한다. 그렇게 자신의 노동에 기대어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안정된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빌이 석탄 배달을 하러 수녀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수녀원 석탄광에 갇혀 학대당하는 소녀를 목격했다. 막달레나 세탁소에 잡혀 영문도 모른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였다. 

빌이 아이를 목격하고 아내 아일런에게 사실을 얘기했는데,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수녀들이 펄롱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고객이라고 말했다.

펄롱이 광에 갇힌 아이를 수녀원에 인계하러 갔는데, 수녀원장은 소녀가 광에 갇힌 게 아이들끼리 놀다가 벌어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말했다. 너무나도 차분한 설명이었다.

“숨바꼭질이겠지. 네 나이에 숨바꼭질이라니. 놀이가 끝난 다음에 널 꺼내줄 생각은 안 했다니”

펄롱은 이 일을 겪기 전까지 막달레나 세탁소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아내 아일런은 물론이고 동네 주민들은 수녀원의 은밀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빌에게 가족을 위해서라도 수녀원과 맞서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웃인 미시즈 케호가 빌에게 전한 충고다.

“자네 정말 열심히 살아서, 나만큼이나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마거린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

펄롱은 세탁소의 부조리를 확인한 이후 번민이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고민 끝에 몰래 수녀원을 다시 찾아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

그 결단은 그의 인생에 적잖은 시련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수녀원은 이미 종교단체가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마피아조직에 다름없었다. 그가 아이를 업고 갈 때 이웃이 보이는 태도는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을 암시한다.

대부분 반갑게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걸었으나, 여자아기의 새카만 맨발을 보고 그 아이가 펄롱의 딸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자 태도가 바뀌었다.

갈등과 번민이 있었지만 펄롱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욱 확신이 깊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는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녀가 겪은 일과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심적 고통에 비하면 앞으로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을 때 칼 포퍼는『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체주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그는 “인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사회 간 투쟁의 역사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 열린사회로 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 열린사회가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결정된 것이 아니고 사회 구성원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 포퍼가 시민으로 하여금 역사의 예언자가 아니라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의 행동은 닫힌사회를 거부하고 열린사회로 한발 내딛는 행동이다. 물론 그것이 혼자만의 행동이었기에, 당장에는 실패로 끝날 게 분명하다. 그런 걸 짐작하고도 마비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그 작은 행동이 너무도 위대하다.


작가 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다.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다.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맡겨진 소녀』를 발표했는데,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됐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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