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무(無),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리듬

[북 리뷰] 욘 포세. 박경희 옮김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 2014)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노르웨이의 작가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2000)은 짧은 분량의 2부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형의 집』, 『유령』 등의 희곡을 쓴 헨릭 입센, 20세기 초반 『굶주림』 등의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크누트 함순 외에 노르웨이 현대 작가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다. 유럽어권의 번역이 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소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 번역본도 노르웨이어에서 한국어로의 번역이 아닌 독일어 번역본의 중역이다.


▲ 책의 표지
욘 포세는 일곱 살 나이에 죽을 뻔 했다 살아남았다 한다. 그 어린 시절의 죽음에 다가간 기억이 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죽음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30대에 쓴 초기작인 『보트하우스』(1989)에서 일종의 히키코모리가 되어 방에 틀어박힌 화자인 ‘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하여 글을 쓴다. 작품 속에서 휴가를 맞아 지난여름 고향에 돌아온 어릴 적 친구 크누텐, 그의 아내와의 만남이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결말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자살로 추정되는 크누트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한다.

『멜랑콜리아 I』(1995)은 실존했던 노르웨이의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라스는 미술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하숙집 딸을 사랑하는 것이 발각되어 쫓겨난다. 소설은 조현병에 사로잡힌 라스의 내면의 독백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라스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멜랑콜리아 II』(1996)는 이미 나이 든 라스의 누나 올리네의 이야기이다. 라스는 이미 죽었고 다른 남동생 쉬버트는 이제 임종이 가까워졌다. 죽어가는 쉬버트에게 가려 하는 올리네는 자꾸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의 방해를 받으며 임종이 가까운 동생에게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올케의 재촉으로 올리네가 찾아갔을 때 동생 쉬버트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후였고 올리네 자신에게도 죽음이 멀지 않았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으로 구성된 『3부작』(2014)에서 죽음은 살인, 사형, 자살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3부작』은 세상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가난하고 어린 연인들, 아슬레와 알리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고향 마을을 떠나 벼라빈으로 간 어린 연인들에게 도시는 냉혹하기만 하다. 하루 밤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올라브로 이름 바꾼 아슬레는 연쇄살인을 저지르지만 결국 범죄가 발각되어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3부인 「해질 무렵」은 알리다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 알레스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미 할머니가 된 알레스에게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 알리다의 모습이 보인다. 알리다는 오래 전 그랬던 것처럼 바닷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죽음을 선택한다.

욘 포세의 이전의 작품들처럼 『아침 그리고 저녁』도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탄생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1부에서는 아들 요한네스의 탄생을 기다리는 아버지 올라이가 나온다. 노르웨이 작은 섬 마을에서 아이를 받으러 온 산파가 진통이 온 산모를 보살피고 있다. 올라이는 아내 마르타의 출산을 문 밖에서 초초히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남자 아이 요한네스가 탄생한다.

... 마르타, 아이의 어머니는 고통으로 소리를 지른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pp.15-16)

1부에서 갓 태어난 요한네스는 2부 시작에서부터 이미 노인이다. 1부에 등장했던 부모님인 올라이와 마르타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평범한 어부였던 요한네스는 한평생을 어부로 물고기를 잡아 팔아서 가족들을 부양했다. 아내 에르나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결혼한 아이들은 다들 독립해서 이제는 요한네스 혼자서 산다.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니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담배와 빵을 살 수 있다.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은 일어날 때 평소처럼 몸이 뻣뻣하지도 않고 가볍게 침대에서 일어나진다. 산책길에서 요한네스는 친구 페테르를 만난다. 낚시를 하러 가지만 루어는 가라앉지 않고 바다 한 가운데 멈춰 서 있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몇 번을 다시 해 봐도 마찬가지다. 손톱이 푸르스름해 지는 이상한 경험도 한다.

하루 동안 요한네스는 친구 페테르, 구두장이 야코프, 젊었을 때 그가 구애를 했었던 안나 페테르센, 아내 에르나 등을 만난다. 모두들 이미 죽어 저 세상 사람들이 된 사람들이다. 요한네스는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는 막내 딸 싱네를 마주치지만, 싱네는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요한네스의 몸을 뚫고 지나쳐 아버지의 집으로 향해 아버지 요한네스의 주검을 발견한다.

이해하겠나? 페테르가 묻는다.
잘 모르겠는 걸, 요한네스가 말한다.
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 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
내 고깃배를 타고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지, 페테르가 말한다
(pp.128-129)


이미 죽은 요한네스의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 전,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난 것이었다. 요한네스와 일상을 나눴던 제일 친한 친구 페테르가 요한네스를 데리러 오고, 요한네스는 별다른 저항 없이 페테르의 고깃배를 타고 저 세상으로 떠난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과 가까웠던 누군가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동반하기 위해 마중을 나온다는 이야기는 동양문화권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온다. 살아생전 나에게 소중했던 먼저 죽은 어떤 존재가 마중을 나와 저 세상으로 함께 걸어간다면, 죽음을 무섭고 두렵지만은 않게 받아들이며 요한네스처럼 담담하게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아침은 탄생, 인간의 삶의 시작, 그리고 저녁은 죽음, 삶의 마무리를 은유한다. 욘 포세는 쉬운 문장과 반복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그의 글은 한편 낯설기도 하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 마음 속 말소리와 그를 둘러싼 풍경,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마침표나 인용부호 없이 뒤섞여 있는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평이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낯설고 새롭다. 1부에서 요한네스는 태어나는 중이고 2부에서 요한네스는 이미 죽어있다. 평범한 어부의 탄생, 삶, 죽음이 묘사 되지만 정작 주인공인 요한네스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며 떠도는 요한네스와 그에게 소중했던 이미 죽은 여러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된다.

…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pp.15-16)

요한네스의 탄생이 묘사되는 1부에서 이미 죽음에 대한 사유가 등장한다. 2부에서 요한네스는 이미 죽었다. 그의 때가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무에서 나와 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 욘 포세는 말한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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