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가 허락한 한 마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북 리뷰] 김이경의 『애도의 문장들』(서해문집, 2020)

어버이날인데 친구 딸 이름으로 문자가 왔다. ‘아버지’, 그러니까 내 오랜 친구가 병환으로 별세했다는 내용이다. 몇 달 전에 거리에서 웃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그새 병환으로 별세했다니. 참으로 허무한 게 인생이다. 어버이날인데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서럽기까지 했다.

장례식장에 가서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위암이란 걸 알았다. 말기 위암 진단을 받은 게 최근 일이고, 그 진단을 받고 병마와 잠시 씨름하더니 그렇게 갔다. 친구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눌 짬도 없이 가면 너무 서운하지 않은가?



책장에서 『애도의 문장들』을 꺼냈다. 죽음에 대해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친구와 그 딸들에게 전할 적당한 애도의 말을 찾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내용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대목.

‘침묵, 기도, 노동을 엄격히 지키는 엄률 시토수도회에서 유일하게 허락한 한마디는, 인사말을 대신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한다. 구도자들만이 아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행진할 때 “메멘토 모리!”하고 외쳤단다. 승리에 도취된 절정의 순간, 죽음으로 삶의 한갓됨을 일깨운 것이다. 그리하여 부질없는 욕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기게 했으니 이보다 근사한 환영식이 있을까.’

우리가 하는 번뇌의 대부분은 인생이 유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온다. 우리는 그 유한함을 직시하는 것,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고 나라는 개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출발이다. 또한, 다른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번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므로, 죽음을 직시하는 것은 나와 이웃을 향해 연민이 싹트는 출발점이라고 한다.

‘죽음의 실체는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구원한다.’고 했던 하이데거의 말과 상통한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가 파킨슨병과 싸우며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죽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슬픔이 불쑬불쑥 치밀 때마다 정처 없이 적었고, 생각을 종이 위에 써서 말렸다. 생의 막다른 지점을 향해가는 아버지와 대화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책에 닮았다. 그 중간 중간에 죽음에 대한 주옥같은 문장 34편을 삽입장처럼 소개한다.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야. 슬퍼하고 있잖아. 그게 아주 힘든 일이야.’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중

사랑을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울면 손수건을 내밀어주고 무슨 얘기를 하면 들어주고, 그렇게 잠시 곁을 지켜주면 되는 것이라고. 위로란 말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 그래서 마음 아픈 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잠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도서관에서 죽음에 대해 공부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소설집 『순례자의 책』, 서평집 『마녀의 독서처방』, 『마녀의 연쇄 독서』, 『책 먹는 법』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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