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에선 ‘바람결에도 몸 사릴 줄 알아야지’

[시집 리뷰] 故 오승철 시인의 『다 떠난 바다에 경례』(2023, 황금알)

오승철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젊어서 문단에 이름을 올린 이후에는 줄곧, 시에 의지하고 시를 얘기하며 살았던 시인이다. 시인이 명마와 씨름하다 떠난 지 1년, 서귀포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퐁낭 한 그루가 사라진 것처럼 삭막하다.

오승철 시인은 1957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시를 사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겨울귤밭」으로 등단해 24살의 젊은 나이에 문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이후 줄곧 시를 쓰고 문학을 얘기하는 걸 즐기며 살았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2023, 황금알)는 시인이 생을 마감하기 세 달 전에 발표한 시조집이다. 시인은 병마와 씨름하는 도중에도 그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시어들을 끄집어내고, 노트에 펼쳤을 것이다. 5부에 걸쳐 주옥같은 작품 59편을 담았다.

그는 서귀포 다방에서, 선술집에서 문인들을 만나 밤이 새는 줄도 모르게 얘기 나누며 젊을 시절을 보냈다. 천성 서귀포사람이고 서귀포시인이니, 서귀포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담은 작품들을 제1부(서귀포를 찾아서)를 내세웠다.

닭장에 갇히거나 아파트에 갇히거나/ 닭의 길, 사람의 길, 그게 그걸 테지만/ 아리랑 아리랑 같은 구불구불 닭내장길 -‘서귀포 동문로타리 닭내장탕’ 2행

동문로터리에 시인이 수십 년 단골 음식점이 있다. 오래된 간판과 주인장이 주는 정감에 그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닭내장탕을 보면서, 아파트 같은 현대인의 삶을 닭장에 갇힌 닭과 비슷하다고 한다. 아리랑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개관한 지 육십 년 누가 그 문 닫았나/ 이름도 서귀포극장 겉모습은 그대론데/ 그 옛날 그들의 뒷모습 쓸쓸함이 만져진다. - ‘서귀포극장’ 제3행

서귀포 이중섭 적거지 북쪽 인근에 서귀포관광극장이 있다. 1963년 개관한 이래 사람 발길이 이어졌다. 집에 TV도 없던 시절, 영화 보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이후 세상이 변했고 극장은 문이 닫힌 채 방치됐다. 2012년 리모델링을 거쳐 지붕 없는 극장으로 변모해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인은 극장 앞을 지날 때마다 영화관에 얽힌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며, 너무나 변해버린 세월이 야속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제2부(물질 끝낸 바다에 경례)에서 그의 시선은 바다로 향하고, 마음은 그리운 이름을 부른다.

섬들이 외로운 날은 사람들도 외롭다/ 한반도의 끝자락 바람받이 총알받이/ 가파도 마라도마저 선명하게 뜨는 날 - ‘모슬포 절울이오름’ 1행

절울이오름은 송악산의 옛 이름이다. 주변에 일제가 만들어놓은 알뜨르비행장과 진지동굴이 있다. 그리고 알뜨르비행장 탄약고는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절울이’는 절(파도)이 운다고 붙은 이름인데, 실제로도 사철 잔잔한 날이 없다. 시인이 작품 마지막 연에 ‘아무리 잔잔한 날에도 잠 못 드는 절울이오름’이라 했듯, 역사적으로도 잠을 이룰 수 없는 슬픔이 서린 곳이다.

3부(펏들펏들 떠도는 눈)에도 흥미로운 시가 있다.

까투리 한 가족이 사냥훈련 나섰다/ 때로는 바람결에도 몸 사릴 줄 알아야지/ “얘들아, 사심육계가 병법 중에 최고란다” -‘까투리가 꺼병이에게’ 전문

꿩은 제주섬의 들판에 서식하지만 멀리 날지 못하는 새다. 오래도록 멀리 떠나지 못하고 섬에 제 목숨을 맡겼던 제주섬 사람들의 운명과도 닮았다. 시인이 꿩에 대해 그토록 많은 시를 남긴 이유다. 까투리는 꿩의 암컷이고, 꺼병이는 꿩의 병아리다. 엄마꿩이 아기꿩 무리를 이끌고 먹이를 잡으러 나갔는데, 바람이 몰려온다. 엄마는 도망하는 게 병법 가운데 최고라고 알린다. 바람 탈 때마다 비극을 맞이했던 섬사람들, 이제 더는 바람에 맞서지 말라고 역사가 전하는 슬픈 교훈이다.

시인은 생전에 『개닦이』(1988, 나랏말=미), 『누구라 종일 홀리나』(2009, 고요아침), 『터무니 있다』(2015, 푸른사상), 『오키나와의 화살표』(2019, 황금알),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2022, 황금알), 『다 떠난 바다에 경례』(2023, 황금알) 등 5편의 시조집을 발표했다.

시인은 지난해 마지막 작품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를 발간하고,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한 권을 선물로 보냈다. 그런데 당시 필자는 일하던 곳을 그만 둘 시점이어서 시조집 서평을 기사로 내지 못했다. 그동안 마음에 빚으로 남았는데, 늦게나마 졸필로 마음의 숙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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