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김만일의 고향인데 마을 운영경비까지 걱정, 무슨 일?

[마을 탐방 ①] 헌마공신 김만일의 마을 의귀리

남원읍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현승민)가 올해부터 분과별로 관내 17개 마을을 탐방해 마을의 소식과 애로를 청취하기로 했다. 지난 11일에 교육문과분과(분과장 양인호)가 의귀리를 첫 번째 마을로 정해 방문했다. 분과위원들은 마을회관에서 오철호 이장을 만나 마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고, 마을 하천을 산책하며 주민들이 마을 경관을 가꾸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현장을 확인했다.

의귀리는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이건의 『제주풍토기』에 따르면, 김말일은 처음에 암말 두 필을 정의현에 두고 길렀는데, 뛰어난 목축 기술을 발휘해 그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종자가 될 만한 좋은 말의 씨를 선택해 송곳으로 눈을 멀게 하는 방식으로 우수 혈통을 지키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보유한 말이 수천 필에 달했다고 한다.


▲ 의귀초등학교(사진=장태욱)

과거 말은 농업, 운송,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게 여겨졌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말 가격은 5승포(면포) 4~500필에 달했다. 당시 노비의 가격이 150필이었으니, 말 한 필이 노비 3명의 가치와 맞먹었다. 김만일은 말을 키우는 재주 하나로 거부의 반열에 올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이어 발발해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이자 김만일은 그 위기를 조정에 이름을 알릴 기회로 삼았다. 조정에 말 1000여 필을 바쳤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 선택임을 내세웠다. 조정에서 요구하기 전에 500필을 먼저 내놓는가 하면, 100필을 진상하라는 요구에 500필을 선뜻 내놓았다. 조정은 김만일의 통 큰 기부에 ‘헌마공신’이라는 칭호로 답했고, 인조 6년(1627)에는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제수했다.

제주자치도는 총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해 서귀포시 한남리 992번지에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을 조성했고, 지난 2020년에 문을 열었다. 의귀리 주민들이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기념관을 수탁해 운영하는데, 의귀리장은 당연직으로 관장을 맡는다.

의귀리에는 현재 524가구, 1129명이 거주한다.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등이 결성돼 활동을 하는데, 의귀공동목장 안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선 이후 파크골프동호인회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 오철호 의귀리장(사진=장태욱)

마을에 들어선 주요 시설로는 의귀초등학교와 의귀새마을금고, 남원농협 의구지점, 의귀보건진료소, 의귀교회, 남선사, 공립 혼디지역아동센터 등이 있다. 의귀초등학교는 의귀리 뿐만 아니라 주변 수망리와 한남리까지 세 마을이 공동 학군을 이룬다.

의귀리는 지난해에 제주자치도가 추진하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시범사업에 참여해 하천과 연못(생이물과 창새미소)을 가꾸고 주변 산책길을 조성했다.

생이물은 서중천이 흘러 의귀천과 합류하는 지점이 있는데, 과거 빨래를 하거나 마소에 물을 먹였던 곳이다. 과거 목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연못이다. 창새미소는 의귀천의 일부 구간인데, 그늘이 지고 웅덩이가 커서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사람들의 식수원이라 주민들은 주변에 계단을 만들어 날마다 찾았던 곳이다. 상수도가 보급된 이후 이곳은 한동안 찾는 이 없이 방치돼 잡풀이 무성하고 쓰레기가 수북했다.


▲ 창새미소 입구에 안내표지와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동판이 세워졌다.(사진=장태욱)


▲ 생이물(사진=장태욱)

마을회는 보존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 외도로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가 공모하는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에도 응모해 선정되기도 했다. 생이물과 창새미소 주변은 깨끗하게 정비되고 산책로도 조성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입구에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안내표지도 부착돼, 이곳의 가치를 알려준다.

한편, 제주개발공사는 지난 2021년 의귀리에 14세대 규모로 공동주택 ‘마음에온’을 준공해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주거급여수급자 등에 임대했다. 주택이 들어선 덕에 의귀초등학교가 학생을 모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의귀리는 장기적으로 마을의 소득원을 발굴하기 위해 소규모 풍력단지 조성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이 공동목장 일부를 사업부지로 제공하고 풍력사업을 추진할 업체를 선정해 공동으로 발전 사업을 시행한다는 목표다. 오철호 이장은 “그동안 일이 자꾸 틀어졌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업체를 선정할 수 있게 나서보겠다”라고 말했다.


▲ 제주개발공사가 의귀리에 건립한 공동주택 '마음에온'.(사진=장태욱)

마을회가 올해 추진과제로 선정한 사업도 있다. 마을 길가의 방풍수를 제거하는 일인데, 마침 제주자치도와 서귀포시가 이 일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오철호 이장은 “사업 신청도 했고, 시장과 읍장 면담도 했다”라며 “삼나무 방풍수를 제거해 꽃가루 알레르기 없는 마을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마을이 이렇게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지만, 애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가 마을회를 운영할 만한 수업원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과거 조건불리직불금의 일정비율(20%) 이상을 의무적으로 마을공동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했다. 그런데 2018년에「농산물의 생산자를 위한 직접지불제도 시행규정‧시행규칙」을 개정해 지자체별로 마을공동기금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후 직불금제가 개편되고 직불금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마을공동기금 적립의 근거가 사라지고 말았다. 과거 마을의 주요 재원이던 직불금 의무적립이 사라지자 마을마다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오철호 이장은 “마을이 무슨 공모사업을 하려고 해도 자부담 비율에 해당하는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 돈이 없어서 기본 운용도 어려운 판에 어떻게 자부담 자금을 마련하겠나”라며 “의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마을 운영에 어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의귀리는 조선시대 김만일의 주무대였고, 현대에 들어서는 감귤의 주산지로서 위용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이렇게 물산이 풍부한 마을인데, 마을 운영비를 걱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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