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난 제 잘난 맛에 살았는데, 제주도에 와보니‥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⑬] 책방 만든 것 따뜻한 이웃

저는 어릴 때 딱히 잘하는 게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었지요. 싫어하는 과목은? 없음! 좋아하는 과목도? 없음!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자신만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잘한다거나,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거나,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거나… 그런 재능을 가진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 '카라네 책부엌'을 만든 건 따뜻한 이웃입니다.(사진=키라 이금영)

특히 그런 능력으로 작곡하는 제 동생이 몹시 부러웠답니다. 공부는 뒷전이던 애가 곡을 쓴다고 밤을 새워가며, 박자를 맞춘다고 손바닥을 쳐가며 곡을 쓰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뿐이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니 공부라도 잘 해봐야지 하며 애를 썼더니 어디 가서 공부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딜 가나 항상 “잘한다”, “예쁘다”라는 칭찬만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정말 제가 똑똑하고 예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학원 일은 대학 졸업 후 직업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지요. 그때는 제가 잘나고 똑똑해서 빨리 인정받아 승진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 못 하는 사람들이 참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아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일을 못 할 수가 있냐고 속으로 흉을 본 적도 있답니다. 어린 나이에 빨리 승진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제 잘난 맛에 살아온 날들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내 잘난 능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있는 거라 여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 저를 콕 찍어 일을 세세히 가르쳐준 부원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녀 덕분에 저는 부팀장임에도 불구하고 팀장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많은 일을 배우고 능력을 키워갔던 거였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책방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능력 있고 잘났어도 일이 진행될 때 그 모든 일을 연결하고 완성하는 것은 바로 제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 옆동네 책방에서 열린 제주레몬 쿠킹 클래스(사진=키라 이금영)

책방 공사가 마무리될 때쯤, 옆동네 책방에서 레몬 관련 쿠킹클래스를 열었고 저도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옆동네 책방 사장님께 제가 책방을 준비한다고 말했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셨지요. 제가 책방을 열겠다고 했지만, 막상 책방에 책을 어떻게 들여와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였답니다. 다행히 옆동네 책방 사장님이 연결해준 도서 유통업체로 인해 어렵지 않게 책방에 책을 입고할 수 있었답니다.


그다음, 책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할 때도, 셰프인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연히 제주귤로 만드는 발사믹식초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했지요. 후배는 귤사믹 식초 사장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줬습니다. 사장님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식재료에 대한 사장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답니다. 저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식재료란 생각이 들어서 귤사믹을 책방의 상품으로 들여놓기로 했지요.


▲ 제주 귤로 만든 발사믹 식초를 넣은 요거트(사진=키라 이금영)

가끔 책방에 오신 손님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책방을 할 생각을 했느냐”고. “어떻게 하면 이런 감각이 생기는 거냐”고요. 그러면 저는 “제 능력으로 이 책방을 만든 게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책방은 제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주변 사람들의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준 거라고 말입니다.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이 각각 하나의 점이라면, 그 점들이 연결되어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어서 ‘키라네 책부엌’이라는 따뜻한 책방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키라네 책부엌’엔 어느 것 하나도 제 주변 사람 도움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답니다. 그러니 이 책방을 완성한 것은 제 주변 사람들의 능력인 것입니다. 제가 육지에서 살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이 소중한 삶의 진리를 제주에서 배웠답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갑니다.
이 글은 책 <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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