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깡 다마’ 구분 못하니 빡세게 ‘귤 명상’에 잠겼다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⑫] 수확의 계절 귤 따러 가는 책방 사장
제주에 살아봐야겠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제가 한 일은 ‘귤 따기’였습니다. 왜 하필 귤 따기였냐고 물어본다면, 제가 사는 마을, 서귀포 남원이 온통 귤밭이었거든요. 여길 봐도 저길 봐도 귤밭이 넘쳐나는 동네. 지금 제가 사는 곳에서 제가 바로 뭔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이 귤 따기였답니다. 아마 제가 주변에 살았더라면 당근을 뽑으러 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주살이 초보자에게 제주가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 제주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자 했던 귤 따기가 제주살이에 크나큰 도움이 될 거라곤 그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지요. 제주어, 제주음식, 제주문화를 귤 따면서 삼춘들에게 배웠으니까요.
귤을 따러 가면 귤밭에서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귤을 따는 사람, 귤을 나르는 사람, 귤을 선별하는 사람. 저는 귤을 따는 사람이구요, 아주 가끔 귤을 나를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음날 한의원으로 갑니다. 허리에 침 맞으러요. 귤 나르는 건 정말 힘들어요. 그리고 귤을 선별하는 일은 귤의 고수인 삼춘들이 그 역할을 합니다. ‘9번 다마’, ‘10번 다마’, 파찌, 귤 크기만 보고도 몇 번 ‘다마’인지 바로 아는 삼춘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나름 귤 따기 7년차가 되니 밭떼기, 저울띠기 같은 귤밭 용어도 제법 안답니다.
7년 전, 귤 따기 처음 1년 동안은 상인들의 귤을 따는 팀에서 위미 삼춘들과 귤을 땄습니다. 귤반장 이모와 함께 7명이 한 팀을 이룹니다. 그때 아주 ‘빡세게’ 귤 따는 현장에 있었답니다. 그때 아주 잘 적응한 덕분인지 요즘은 아주 편하게 전속으로 귤따는 귤밭에만 귤 따러 갑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귤밭에서 귤을 따는데 이 귤밭에 가면 저 혼자서만 하루 종일 귤을 땁니다. 특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귤밭에서 귤 따는 일은 최고랍니다. 말없이 혼자 귤만 따는 데 귤 명상이 따로 없거든요. 잡념이 없어져요. 가끔 귤나무와 대화도 하긴 합니다.
▲ 워커홀릭 삼춘들과 귤 따면서 제주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사진=키라)
귤 따는 계절이 오면 책방보다 귤 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귤은 지금 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귤 따는 시기가 모두 비슷하다보니 이 시골에서는 귤 따는 일에 항상 일손이 모자랍니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매일 귤 따러는 못 가게 되었지요. 대신 주변 삼춘들의 귤밭에 일손이 부족하면 간혹 책방 문을 닫고 귤밭에 가기도 합니다. 한창 하우스귤을 따는 여름날, 주인 삼춘에게 전화가 옵니다. 오후에 나 대신 귤 좀 따줄 수 있냐고요. 오늘 귤 따는 밭이 신흥리라서 아무래도 오후에 삼춘네 귤밭에 소독을 좀 해야 할 것 같다고요. 그래서 저는 점심에 책방 문을 닫고, 책방근처 귤밭으로 갔습니다. 주인삼춘의 귤가방을 넘겨받고 삼춘대신 삼춘도시락도 먹고, 오후 내내 다른 삼춘들과 귤을 땄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평소와 똑같이 새벽에 도시락을 싸서 귤가방을 메고 귤트럭을 타고 귤밭에 갔답니다. 그 귤밭 주인아저씨가 제게 묻더라고요. 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해요? 저는 웃으면서 대답했지요. 왜요? 젊은 사람은 귤 따면 안되나요? 그 아저씨의 질문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육지에서 온 귤밭 주인아저씨는 육지사람의 시선으로 저를 봤던 겁니다. 육지 사람들은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요. 저도 육지에 살 때는 그랬으니까요. 제주 사람들 입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이제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삼춘들하고 귤 따면서 알았습니다. 삼춘들이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귤 따러 온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요. 워커홀릭 DNA를 뼛속까지 장착한 부지런한 제주 할머니들은 잠시도 쉬는 법이 없는 분들이거든요. 이런 제주 할머니들 덕분에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답니다. 저는 제가 제주에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삼춘들과 함께 1년 동안 귤 따러 다닌 일이랍니다. 제가 살면서 어디가서 이런 귀한 삶의 경험을 해보겠어요? 키라와 함께 귤따러 다녔던 위미리, 남원리 삼춘들, 늘 감사했습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책<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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