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재건된 초가 사찰, 예불 때 화전민에게 손녀 맡긴 할머니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60) 도순동 화전민(4)
<왕하리화전 기사 이어집니다.>
도순동 1354번지 서쪽 냇골에 물이 있었는데, 가뭄이 심하면 화전민들은 동쪽 왕하리내(궁상천 상류)에서 물을 구했다. 서쪽 내 골짜기 곁 집터 사이에는 지금도 돌방아 아랫돌이 남아 있다. 주변 문 씨, 윤 씨, 나 씨 집안이 돌방아를 함께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순동 1345번지에는 윤백권이 살면서 1344번지의 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도순동 1342번지 밭도 윤 씨 소유로 추정되나 그의 후손은 찾을 수 없었다. 도순동 1345번지에는 지금도 당시 윤 씨가 거주했던 집터와 봉덕 자리가 남아있다.

화전 터에는 집터와 봉덕, 돌방아, 대나무, 울담, 그릇 파편이 남아있다. 화전촌 북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궤에는 깨진 그릇조각이 남아 있다. 제주4·3 때 영남동 피난민들이 숨어들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914년, 영남동 235번지에는 문운갑이란 사람이 살았다. 『잃어버린마을을 찾아서:1998』 영남동 편에 문두현의 구술이 있어, 이곳에 살았던 문 씨 집안의 이력을 추정할 수 있다.
저의 선친이 살아 있으면 96세인데 어점이악 앞에 ‘왕하리’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어점이악 서남쪽 될 것인가. 하천변인데 거기서 거주를 하다 저의 선친께서 여덟 살 때 판관마을로 이주를 하여 오고, 영남으로 와 살다가 20여 년 전후에 영남으로 모아진 것이죠. 지금 산록도로가 뚫리고 있는 위 1km쯤에 ‘코뻬기동네’가 있었고, 김 씨 집안 세 가구가 살다가 후에 영남동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김창헌 씨 집안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4·3사건이 나던 해로 영남마을이 생긴지 92년이 되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설촌 시기는 1850년대가 될 겁니다.
구술을 근거로 보면 문운갑의 선대는 영남동으로 오기 전 왕하리 화전촌 어느 곳인가에서 살았을 것이다. 문두현의 부친은 1901년생이며 8살이 되던 1909년 판관마을로 다시 이주했고 20년 후인 1930년 영남동으로 이주한 것이다. 영남동 서치모르 화전이 만들어진 것은 1948년에서 92년 전이라니, 영남동은 1852년 전후로 설촌됐음을 알 수 있다. 문두현의 부친이 1909년부터 판관마을에 살았다면 1914년 지적원도에 문 씨 집안 가옥이 있어야 하는데, 등기사항이 확인되지 않는다. 문두현의 기억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순동 서케 산록도로 북쪽 ‘편안널’이란 지역 중 산 77-5번지에는 양 유서 화전이 있었다. 양 유서는 유학자를 이르는 유서(儒書)의 별칭이다. 인근에서 목축을 하는 오○영의 구술을 빌리면, 양 유서 화전터에는 숲이 조성되기 전 세 채의 집이 있었다. 오O영은 그곳에서 돗통시, 살레왓을 본 적 있다고 진술했다.
해방과 함께 일본에서 돌아온 월평동 강인호(1937생)는 4·3사건 때까지 외할머니 백인화 보살을 따라 무장항일운동 발상지인 법정사 터에 따라다녔다. 당시 법정사 터에는 초가로 지은 법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는 1848년 항공사진에서도 확인된다.

외할머니 백인화 보살는 법정사에 갈 때 공양할 쌀을 가지고 갔다. 불공을 드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외할머니는 지나는 길에 있는 양 유서라는 화전 집에 손녀 강인호를 맡기고 갔다.
강인호는 법정사에도 들른 적이 여러 번 있어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초집 법당 가운데에 불상을 모시고 서쪽에 부엌, 동쪽에는 행랑을 놓았다 한다. 동측 돌담 사이는 불공을 드리러 오는 출입구가 됐다. 물은 서쪽 냇가 물을 길어다 이용했으며 샘터는 없었다. 1918년 무장항일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불에 타며 사라졌던 법정사는 백인화보살에 의해 다시 사찰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법당도 4·3사건에 불에 타버렸고 깨진 솥이 지금도 남아있다.
<계속>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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