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입구에 무덤, 어찌 이토록 화려한가?
[주말엔 꽃] 꽃으로 물든 무덤
집 뜰인데, 작은 무덤이 있다. 그런데 동백꽃과 유채꽃이 그 작은 무덤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무덤에서 움이 난 고사사리가 봄 햇살을 받고 솟아올랐다.
10일에 하례2리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어느 집 마당 입구에서 무덤 한 기를 봤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데, 크기가 작은 것을 보와 아이의 무덤으로 보인다.
무덤 남쪽에 동백나무. 빨간 동백꽃이 봄이 되니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졌는데, 무덤 돌담을 빨갛게 수놓았다. 집 주인장이 무덤을 가리려고 동백나무를 심었는지, 아니면 무덤 주인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서 심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인장의 의도야 어떠했던 무덤은 빨간 꽃으로 황홀하게 물들었다.
무덤 돌담 안에는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무덤 안에 누가 씨를 뿌리지는 않았을 테고, 어디에서 날아든 유채 씨가 무덤 안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들어 떨어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올해 봄과 가을에 벌초를 한다고 해도, 땅에 떨어진 씨앗은 다시 겨울에 순을 내고 봄에 꽃을 피울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덤 안은 온통 고사리 천지다. 봄비를 맞고 움이 난 고사리가 따스한 햇살을 반겨 길쭉하게 자랐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 탐스럽기까지 하다. 고사리가 무덤에 이렇게 실하게 컸는데도,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무덤이 이렇게 마당 입구에 있는 건 흔치 않는 일이다. 오래 된 무덤 근처에 집을 지은 것인지, 집을 지은 후에 무덤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꽃으로 물는 무덤이 집 뜰에 있는 것도 좋아 보인다. 땅이 줄어드는 시대 분위기에 맞춰, 봉분 말고 평장묘 정도는 뜰에 조성해 주변에 꽃을 가꿔도 좋을 듯하다. 집 주변에 묘를 두는 일본인들의 풍습도 눈여겨보면 좋겠다.
작가 한강이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에서 강연할 때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자들을 구하고 있다는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한다고 생각했다. 오름같은 초가집을 짓고, 죽어서는 돌담을 두른 초가와 닮은 무덤으로 돌아갔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죽은 자가 산자를 돕는다는 건 제주 사람들의 오래된 실천이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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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