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마공신 김만일의 후손, 김홍집 만난 후에 귤 키웠다
정세호 박사 5일, 김만일 기념관에서 ‘큰낭 이야기 - 김만일 후순 나무’ 강연
헌마공신 김만일 기념관이 5일, ‘제주차와 함께 하는 문화프로그램’ 7회차 강좌를 열었다. 기념관은 이날, 정세호 박사를 초청해 ‘큰낭 이야기 - 김만일 후손 나무’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김만일은 조선시대 말을 키워서 부를 일구고 그 말을 조정에 바쳐 조선에서는 유일하게 헌마공신(獻馬功臣) 칭호를 얻었다. 그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230년 간 제주산마감목관을 맡아 산마장을 운영하고 조정에 필요한 말을 공급했다. 정세호 박사는 제주도에 오래된 나무 가운데, 김만일 가(家)에 의해 도입된 것들을 소개하며, 이들을 엮어 지역 문화자원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만일은 1550년(명종 5), 정의현 의귀리에서 태어나 1632년, 8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만일은 섬의 정병이었다. 처음에는 암말 두 필을 정의현에 두고 길렀는데, 말의 수가 빠르게 늘어 가장 많은 때는 1만 필에 이르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조선 명종, 선조, 광해군 및 인조가 재임하던 시절로 국운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국가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는 동안 조정에 말 1300여 필을 바쳐 헌마공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말을 통해 부를 일궜을 뿐만 아니라 국난극복이라는 명분과 신분상승이라는 실리는 모두 챙긴 셈이다.
효종은 김만일 가의 마필을 바친 공로를 인정하여 동·서별목장을 산마장으로 만들어 목양케 하였다. 그리고 ‘제주산마감목관’제를 신설해 김만일의 아들 김대길을 초대 산마감목관에 임명했다. 이후 김만일의 후손들은 19세기 말 김경흡까지 218년 동안 83명이 제주산마감목관을 세습했다.
정세호 박사는 “당시 말 한 필의 가치는 노비 3명과 같았다. 그런데 말이 제주도에서 나주로 가면 가격이 두 배가 됐고, 다른 도로 가면 세 배가 됐다.”라며 “말은 당시 농사와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김만일 후손 나무로 우선 감귤박물관 입구에 식재된 하귤나무를 소개했다.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제31호(신효동 하귤나무)’로 결정된 나무다. 감목관을 지낸 김명추의 아들 김병호가 1894년 김홍집 총리를 방문한 후에 종자를 구해와 심은 것의 자목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경주김씨 김만일 가에서 공마제도와 감목관제에 따른 불편이 크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집안에서 김병호를 대표로 내세워 조정에 어려움을 알리기로 했다. 김병호는 1894년(고종 31), 당시 총리대신이던 김홍집을 방문했다. 김홍집은 1894년 총리대신에 올라 과거제를 비롯해 구식제도를 폐지하고 신식화폐제와 도량제도를 도입하는 개혁을 주도하고 있었다.
정세호 박사는 “김홍집은 당시 위세가 가장 좋을 때라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대기했는데도, 제주도에서 경주김씨 종친이 찾아와서 무척 반갑게 대했다고 전한다.”라고 말했다.
김병호가 호소한 대로 공마제도와 감목과제는 폐지됐다. 김병호는 돌아오는 길에 한양의 종자상에서 감귤 종자 세 개를 구입해 와서 심었는데, 그게 자라서 도내 최초의 하귤이 됐다.
정 박사는 “감귤박물관 표석에는 하귤나무 씨앗을 김홍집이 주었다고 기록됐는데, 경주김씨 족보에는 이에 대해 종자상에서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라며 “감귤박물관 표석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음 소개한 건 토평동 소재 제주대학교 부설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 마당에 있는 육계나무 두 그루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가 있던 곳인데, 거기에 10미터 이상 높이 자라 철제 기둥으로 가지 여러 곳을 받쳐줘야 겨우 지탱할 수 있다.
정세호 박사는 이 나무가 여기에 자라는 데에는 마지막 감목관 김경흡의 아들 김희은의 역할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육계나무는 살충 효과가 있어서 구충제로 널리 사용됐고 계피차를 만드는 원료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에 김희은은 1921년, 도련동에 거주하는 김인현을 통해 묘목을 도입했다. 육계나무가 남원읍에 도입된 계기다.
김인현은 육계나무 묘목을 자신에 집에 심었다. 그리고 1973년, 박정덕이 거기에서 나온 어린 묘목을 토평동 소재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에 심었다. 그게 자라서 하늘을 가리는 고목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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