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한라산 배경으로 피어난 붉은 꽃, 과연 한국적 경치’
[주말엔 꽃] 옛 동백마을 효돈에 핀 붉은 꽃
동백나무는 겨울철 짙은 녹색의 윤기를 발하다가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홀로 붉은 꽃잎을 펼친다. 살아 있는 많은 것들이 생기를 잃어갈 계절에 붉게 꽃을 피우는 독특한 활약상으로, 이 꽃은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았다.
제주도에서 동백나무는 쓰임이 많았다. 바람이 많은 고장이어서 울타리에 심으면 바람을 막아주기 딱 좋은 나무였다. 해풍에도 강하고,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으니 예전 서귀포에는 집집이 동백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 씨는 기름을 내어주는 효자나무였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사람들은 동백기름은 식용유이자 화장품이었다. 전을 지질 때도, 머리카락에 윤기를 낼 때도 동백기름 한 가지면 충분했다.
서귀포시 신효동 감귤박물관으로 들어서는 동쪽 진입로로 들어서는 어귀에 동백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집이 있다. 한 그루가 아니고 여러 그루를 빼곡하게 심었는데, 나무마다 붉은 꽃을 활짝 피웠다. 예전 토종 동백꽃이 아니고 애기동백꽃인데, 빛깔이 얼마나 곱고 화려한지 지날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두 개인데, 하나는 마당으로 향하고 하나는 뒤뜰로 향한다. 집 돌담은 나지막하게 둘렀는데, 그 위로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자란다. 개인집인데, 돌담과 동백나무만으로도 부러움을 자아낸다. 붉은 꽃이 피어있는 동안 풍류가 집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효돈은 제주도에서 귤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과거에는 동백나무로 유명했다. 석주명 선생은 『제주도생명조사서』에 신효·하효리에 대해 기록하기를 ‘따뜻하여 제주도 제일이라 하고 동백나무가 가장 많은 마을’이라고 했다. 또, 『제주도수필』에는 동백나무에 대해 ‘제주도에서도 남부 특히 신·하효리에 많다.’라며 ‘아열대식물인 상록수의 붉은 꽃이 겨울에 눈 쌓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하고 만발한 광경은 한국적 경치라고 할 수 있다’라고 극찬했다.
겨울에 효돈에 동백꽃이 피었을 때, 겨울에 한라산에 눈 쌓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연출한는 장면은 전국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장관이었다는 말이다.
효돈은 예나지금이나 제주도에서 가장 따뜻한 마을이다. 제주도에 감귤이 도입되면서 두 마을은 동백의 고장이 아니라 감귤의 고장으로 변했다. 석주명 선생이 극찬했던 동백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신효마을회관 남쪽 앞동산에 오래된 동백나무가 이정표처럼 지키고 있다. 석주명 선생이 언급했던 동백마을을 증언하는 나무 가운데 몇 안 남은 것이다.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가지를 냈는데, 둘레가 사람 대 여섯 명의 몸통을 모아야 할 정도로 크다. 토종 동백나무여서 아직은 꽃잎을 펼치지 못했다.
건장한 동백나무 주변에 어르신 한 분이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는 나무인데, 별다른 표식이 없다. 과거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았던 나무인데, 그 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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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