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잊었나? 버려졌던 섬을 지키는 노란 꽃

[주말엔 꽃] 새섬에 피어난 감국

바람이 부는 날, 서귀포 새섬을 찾았다. 이 섬에선 겨울철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은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산책길이 조성돼서, 숲에서 나무냄새와 바다냄새를 한꺼번에 누리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약 100년 전 서귀포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서귀포항 축항 기성회를 결성하고 방파제를 만들었는데, 당시 방파제는 지금의 새연교 아래를 지나 새섬에 이른다. 그렇게 짧은 방파제로도 새섬이 있어서 파도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 덕택에 항구 안에 고래공장이 들어섰고, 그 영향으로 서귀포는 근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 새연교를 지나 새섬으로 가는 길(사진=장태욱)

겉으로 보면 새섬은 두터운 바위로 이뤄진 불모지이지만, 실제로는 이 섬에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해송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까마귀쪽나무와 보리밥나무, 우묵사스레피, 팔손이, 쥐똥나무, 천선과 같은 것들을 군데군데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도 사람이 거주한 적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귀포 솔동산에 살았던 오 아무개는 무슨 일인지 새섬에 정착해 집을 짓고 살았다.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야외에는 금물과원이 복원됐는데, 그곳에는 새섬에서 옮겨온 진귤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귤나무는 과거 새섬에 살았던 사람이 심은 나무일 게다.

이렇듯 민초들은 조정이나 정부가 방치했던 땅에도 자리를 잡고 생명을 키웠다. 작가 김훈이 『칼의 노래』에 남긴 명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왕조시대 방치된 민초들의 운명과 숙명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슬프고도 아름답다.


▲ 새섬 산책로(사진=장태욱)

새연교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것이어서 몸이 시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섬에 오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잦아들었다. 바람에도 제 길이 있는 것이다.

산책로를 지나다보면 섬의 서쪽에 판판한 자리가 나온다. 과거 이 섬에 살았다는 오 아무개의 집이 있던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대지에 노란 들국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한 노란색을 자랑하는 감국이다.


▲ 감국 군락(사진=장태욱)

▲ 감국이 노란 빛깔을 자랑한다. 버려진 섬을 지켰던 민초들의 숙명을 닮았다.(사진=장태욱)

감국은 산국, 구절초와 더불어 가을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야생 국화다. 농경지와 해안가, 산기슭 초지 등에 서식하는데, 줄기는 갈색으로 가늘고 길며 곧게 서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자란다. 보통 10∼11월경에 직경 1.5∼2.5cm 정도의 노란색 꽃이 핀다. 가을에 피는 꽃이지만 따뜻한 이 섬에서는 계절을 잊고 여전히 노란 빛깔을 자랑한다. 색깔에서 황국(黃菊)이라고도 불리고, 꽃잎에 단맛이 있어 감국 또는 단국화라고도 불린다.

감국을 한의학에서는소염, 해열, 두통 완화, 혈압 강하 등으로 이용됐다. 그리고 약용적인 기능 이외에도 향기가 좋아 국화주, 향로 등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감국을 장수식품으로 여겨 감국주를 담아 먹거나, 감국차로 마시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이유하 차고도 넘치는 꽃이다.

빛깔이나 향기, 효능에서 빼놓을 게 없는 꽃이 이 버려졌던 섬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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