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튀어나올 것 같은 통시가 숲속에, 이런 게 왜 여기?

남원읍주민자치위원회 30일, ‘화전민 발자취를 찾아서’ 답사 펼쳐

기습한파가 물러가고 하늘이 화창하게 열린 주말, 숲속에서 신기한 유적이 감춰둔 실체를 드러냈다. 제주4·3 이전까지 화전민들이 살았던 집자리와 농토인데, 탐방객들은 처음 바라보는 유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원읍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현승민)가 11월 30일 오전, ‘화전민의 발자취를 찾아서’ 탐방을 펼쳤다. 제주자치도 활동지원 보조사업으로 추진한 사업인데, 남원읍 주민 20여 명이 답사에 동참했다. 한상봉 한라산 인문연구가가 이날 일행을 인솔했다.


▲ 남원읍주민자치위원회가 11월 30일 오전 남원읍 신례리 이승이오름 주변에서 '화전민의 발자취를 찾아서' 탐방을 펼쳤다.(사진=장태욱) 

탐방팀은 이날 해그무니소를 거쳐 신례리 김구하 화전과 박춘삼 화전을 차례로 둘러봤다. 화전민이 살던 집터와 창고, 통시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탐방객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해그무니소는 이승악 서쪽 숲속에 있는 연못인데, 과거 화전민은 이곳에서 물을 얻기도 했다. 한상봉 연구가는 화전민이 숯을 구을 때도 물이 필요한데 해그무니소가 물 공급처였다고 설명했다.

화전민 터 앞에 이르자 한상봉 연구가는 화전민이 터를 잡을 때 뒤에 언덕이 있고 앞에 냇가가 있는 곳에 집터를 정했고,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지형이 파판한 곳이 있어서 농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 탐방객들은 이날 화전민터 가는 길을 알리는 리본을 나무에 매달았다.(사지=장태욱)

▲ 시민 20여 명이 동참했다.(사진=장태욱)

한상봉 연구가는 화전민이 당시 화전에서 농사만 지은 게 아니라 소를 키우고 숯을 구원서 생계를 이었다고 설명했다. 화전민이 자신의 소만 키운 게 아니고 신례리 주민들이 맡긴 소를 돌봐서 삯으로 곡식을 받기도 했다는 것. 그 외에도 신례리 주민들이 도구를 만들 때 나무를 구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에, 주민들은 화전민에게 잘 보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1910년대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펼칠 때, 박춘삼 가족은 등기 신청을 하지 않아 토지 소유권을 얻지 못했고, 김구하 가족은 등기를 해서 소유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제주4·3이 발생하자 화전민은 모두 집을 떠났다. 이후 화전가옥은 군경의 폭력을 피해 산으로 오른 주민들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고, 더 이후에는 비가 내리는 날 목축을 하는 주민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박씨 일가가 살았던 집터 앞에서(사진=장태욱)


▲ 창고터로 추정되는 곳에서(사진=장태욱)

▲ 옛날 통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사진=장태욱)

이후 생활터전에서 내몰린 화전민 후손의 대부분은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화전민이 떠난 터전은 이후 지역 유지들이 접수해 표고장을 운영해 부를 일궜다고 했다.

이날 정창용 남원읍장도 탐방에 동참했다. 정 읍장은 “내가 고향이 신례리임에도 우리 마을에 이렇게 화전민의 유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라며 “이번 탐방을 계기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유익한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탐방에 동참한 여행객도 있었다. 인천에서 둘레길 해설사로 활동하는 이재강 씨는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다른 지역에 알리면 많은 사람이 동참할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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