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에 해 솟으면 처음 볕이 드는 마을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⑧ 연안습지의 보고 오조리
해 뜨는 마을은 성산이지만, 햇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을은 오조마을이다. 이름도 그렇다. ‘성산’이라는 이름에 ‘일출’이 따라붙은 건 오래지 않다. 그냥 ‘성산(城山)’이었을 뿐이다. 유독 ‘오조(吾照)’라는 마을에만 해와 연관이 든 한자가 붙어 있다. “내게 볕이 든다”는 뜻일까? 언제부터 오조마을에 ‘비춘다’는 뜻을 담은 한자가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오소(吾召)’라는 이름이 더 먼저 등장한다. 그 역시 우리말을 한자어로 옮긴 것인지, 한자어가 먼저인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마을 이름은 ‘오조’뿐이다. 그냥 쉽게 받아들이자. 오조마을은 내게 선물을 주듯, 햇볕을 안겨주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바다와 살아온 삶
오조마을이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건 군사 시설과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방호소라는 이름과 수전소라는 이름 앞에 ‘오소포’라는 포구 이름이 붙어 있다. 오조마을이 오래전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임을 말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정의현성이 처음 들어선 곳은 고성리였기에, 이웃한 오소포에 군인들이 주둔한 건 당연했다. 특히 수전소는 해군이 터를 잡고 있었음을 일깨운다.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많았고, 군사 목적 이외의 어로 행위도 이 마을에서 많이 이뤄졌다. 1996년 남제주군이 발간한 <남제주군고유지명>을 보면 오조리엔 예전부터 제주 사람들이 예전에 사용했던 배이름인 ‘덕판’이나 ‘쌈판’ 등의 관련 내용을 구전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그런 흔적은 없다.
오조포구는 식산봉이 바람을 막아준다. 배를 대기에도 좋다. 때문에 예전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 역시 강할 수밖에 없다. 식산봉이라는 이름도 왜구와 인연을 지닌다.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이 마을 사람을 동원해 오름을 이엉으로 덮게 했다. 마치 커다란 낟가리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를 본 왜구들이 오름을 쌓을 정도로 군량미가 많다고 느껴서 상륙을 포기했다고 전한다. 식산봉에 ‘먹을 식(食)’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를 이은 양어장의 탄생
시대가 변하면서 ‘잡는 어업’이 아닌, ‘기르는 어업’이 등장한다. 바로 양어장의 탄생이다. 기르는 어업이 조선시대에도 없지 않았지만, 흔하지는 않았다. 기르는 어업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활발해진다.
오조마을은 커다란 양어장을 지니고 있다. 시작을 알린 인물은 제주 출신 장용견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정의군수로 부임할 때 오조마을에 양어장을 구축한다. 그가 정의군수로 재직한 건 1907년부터 1910년까지이다. 이때 오조마을에 양어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인 1912년에 오조마을의 양어시설을 다시 조성하고, 1918년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돌로 보를 만들고, 바닷물의 높고 낮음을 활용해 고기를 가둔 어로시설이다. 제주의 첫 양어시설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때문에 양어장 안에 만든 시설을 ‘장정의보’라고도 부른다.
오조마을의 양어장은 다시 만들어진다. 1961년 이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공동소득 개발원을 찾는 과정에서 양어장을 떠올린다. 정부에 양어장 시설을 건의하게 되고, 1962년 착공해서 이듬해 완공된다. 둑의 길이는 182m이며, 수문 2개를 만들었다. 여기에 마을 주민 2500명이 힘을 쏟았다.
▲드라마가 주목하는 마을
오조포구로 향하는 길에 있는 돌창고 하나가 눈에 띈다. 어구를 보관하던 창고였는데, 2016년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로 돌창고가 주목받는다. 잠시 이목을 끌다가 시들해지다가 2020년 드라마 <며느라기>, 최근엔 <웰컴투 삼달리>로 다시 이목을 모으고 있다. 드라마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이 많이 찾게 되면서 밖에서 오는 이들은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걸어올 것을 주문한다. 걸으면서 볼 때 오조마을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웰컴투 삼달리> 속에 해녀의 삶도 있다. 해녀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직업군이다. 욕심을 내면 ‘물숨’을 들여마시게 되고, 삶과 이별을 고한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주인공 삼달이에게 숨고르기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오조마을에 있으면 숨을 고르게 된다. 오조포구에서 수많은 해녀들이 바깥물질에 나서곤 했다. 욕심내지 않으려 했던 그들의 삶. 오조마을에서 읽게 된다.
▲포구를 벗어나니, 또 바다
달은 하나인데, 두 개의 달을 오조마을에서 만난다. 돌창고 바로 뒤에 작은 언덕이 있는데, 그걸 ‘쌍월동산’이라 부른다. 대체 어떻길래, 달이 두 개일까?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달이 뜨면, 그 달이 바다에 비친다. 하나는 하늘에 있고, 하나는 바다에 있다. 그게 쌍월이다. 밤이어야 관망할 수 있다니, 그게 아쉽다.
쌍월을 기다리기는 힘드니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체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성산포항으로 이어지는 갑문교를 지나기 전에 너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그 일대를 조개왓이라 부른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가 되면 여기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조개잡이를 하기에 최적이다.
▲남은 이야기
오조포구에서 식산봉을 향해 걷다가, 연안습지를 만난다. 철새가 가까이 보인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이곳의 연안습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식산봉 서남쪽에 희귀식물 ‘황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황근자생지로 노란 무궁화꽃이 필 때 찾으면 좋다. 화산활동을 느낄 수 있는 지질트레일 코스도 오조마을에 있다.
자연이 살아 있고, 인문환경도 가득한 오조마을. 해가 비추면 그 해가 자신임을 깨달으면 되고, 해가 숨어 있다면 오조마을에서 숨어 있는 자신의 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서귀포사람들’이 지역 파트너쉽 사업으로 작성한 기획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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