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썬 무 사이로 싱싱한 옥돔, 국 한 그릇이면 명절 끝

[동네 맛집 ㉘] 태흥리 옥돔집

추석연휴가 시작됐다. 최근에는 명절 대신 여행을 떠나는 가정이 많아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명절을 지내지 않은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모처럼 찾아온 연휴에 스트레스 주고받지 말고 바람이나 쐬는 게 낫다는 의견도 이젠 제법 세를 얻는 분위기다.

그런데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추석이면 명절에 맞는 음식이 머리에 떠오른다. 기름기 꽉 차서 먹기 부담스러운 음식 말고, 간단하면서도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음식. 그제 제주도에선 옥돔국이다.


▲ 옥돔국이 나오기 전에 반찬이 먼저 상에 으른다. 반찬이 정갈한데, 고등어 구이는 향기부터 최고다.(사진=장태욱)

내가 어릴 때까지도 어른들은 옥돔을 ‘솔라니’나 ‘생선’이라고 불렀다. 그 외로 갈치는 ‘갈치’로, 조기는 ‘조기’로 불렀는데, 유독 옥돔은 ‘솔라니’ 혹은 ‘생선’이라 불렀다. 그런데 옥돔으로 국을 끓이면 ‘솔라니국’이라고 하지 않고 ‘생선국’이라고 했다. 그러면 ‘생선’은 옥돔을 약간 높여 부르는 이름으로 들렸다.

명절이나 제사엔 보통 ‘생선국’을 끓였고, 말린 옥돔을 상에 올렸다. 그러니까 옥돔은 명절상에 키플래이어여서 어른들은 명절이 되기 훨씬 전에 옥돔을 사서 말렸다. 제사나 명절에 쓰는 고기나 생선을 ‘제숙’이라고 불렀는데, 옥돔은 가장 핵심적인 ‘제숙’이었다.


▲국그릇은 옛날 사기그릇인데, 쌍희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다.(사진=장태욱)

옥돔으로 국을 끓일 때는 미역이나 무, 파를 넣고 끓인다. 그런데 간장이나 소금을 제외하고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옥돔 그 자체가 맛이 있는데, 다른 조미료로 그 맛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남원읍주민자치위원회 위원들과 빨래 봉사활동을 펼친 후 점심으로 옥돔국을 먹기로 했다. 단체로 남원읍 태흥리에 있는 ‘옥돔집’을 찾았다. 지역에서는 ‘옥돔국’ 맛집으로 꽤나 알려졌다고 했다.

태흥리는 옥돔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태흥2리 어항이 지난 2020년 해양수산부가 시행한 ‘2020년도 어촌뉴딜300 사업’에 선정돼 최근 사업을 마쳤다. 4년 동안 항구도 정비하고 옥돔 명품관, 정주시설도 갖췄다. 옥돔집은 옥돔마을 태흥리의 맛을 보여주는 집이다.


▲ 무채를 걷어내면 옥돔의 붉은색 지느러미가 보인다. 한눈에도 싱싱하다는 걸 알 수 있다.(사진=장태욱)

식당 입구에 ‘당일바리 옥돔 전문식당’이라고 적혀 있다. 손님 20명 남짓 앉을 정도의 아담한 홀은 목재로 깔끔하게 장식이 됐는데,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그림이 붙어 있다.

반찬이 먼저 상에 올랐다. 큼지막한 고등어 한 마리가 네 명이 앉은 상 가운데 올랐다. 그리고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호박무침, 멸치볶음, 미역무침, 도토리묵, 어묵볶음 등이 밑반찬으로 상을 채웠다. 기름기와 함께 풍기는 구운 고등어의 고소한 냄새, 이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밥과 국이 나오기도 전인데도, 고등어에 젓가락이 바삐 오갔다.

그리고 5분 넘게 기다린 후에 밥과 함께 옥돔국이 등장했다. 밥은 일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국그릇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옛날식 사기그릇이다. 하얀색 국그릇에는 예전에 많이 보던 쌍희자(囍) 초록색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옥돔국 풍경이다.

옥돔과 함께 잘게 썬 우무를 넣고 끓인 옥돔국이다. 그 위에 파와 모자반을 고명처럼 올렸다. 상에 오르기도 전에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데, 국물 한 숟가락 떠서 먹으니 단백하고 진한 옥돔국물 맛이 제대로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 딱 입맛에 맞았다. 숟가락으로 무를 걷어내니 손바닥만 한 옥돔이 붉은 빛을 내는데, 그 색으로도 싱싱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주인장은 수산물 직매장과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사진=장태욱)

주인장은 식당 바로 옆에서 수산물 직매장을 같이 운영한다. 태흥2리 옥돔 매장의 중매인이라, 매일 싱싱한 옥돔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국에 1인분 분량만한 옥돔을 매일 구할 수 있는 것도 직매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추석은 오지도 않았는데, 명절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아 명절음식이 그리운 사람은 태흥리 옥돔집을 찾을 일이다.

옥돔집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 853, 064-764-1021
옥돔무국 1만5000원, 옥돔매운탕 1만8000원, 고등어국이 1만5000원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