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열 식혀주고 정방폭포 장관까지 만드는 연못

[물이 빚은 도시 서귀포] 정모시 쉼터

평일인데도 아이들이 막바지 물놀이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하천 연못으로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주변에 숲이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떠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서귀진 병사들의 생활용수가 됐던 물인데, 지금은 더위에 지친 시민에게 휴식처가 되어준다.

서귀포시 동홍천은 쌀오름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헬스케어타운 주변을 지나 동홍동을 관통한 후 정방폭포에서 바다로 떨어진다. 동홍천은 바다에 이르기 전 대부분 구간이 건천이다. 다만 일부 구간에서 지하수를 뿜어내는데, 그 물로 인해 과거 홍리 사람들과 서귀진 병사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


▲ 정모시 쉼터. 정모시는 서귀포중학교 동쪽에서 솟아난 물이 모여 만들어진 연못이다. 이 물이 흘러 바다로 떨어지는 게 정방폭포다.(사진=장태욱)

동홍천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몇 군데 있는데, 첫 번째로 가시머리물을 들 수 있다. 여름에 멱을 감고 농업용수로 활용했던 물인데, 주변 지장샘과 더불어 주민들에게 추억이 깃든 샘이다.

조금 더 하류로 가면 산지물이 있다. 중산간도로 주변에서 많은 양의 지하수를 분출하는 샘인데,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주민들이 이 물을 식수로 활용했다. 과거 홍로가 형성된 근거가 되는 물이다.

산지물을 지나면 마른 물이 별로 나지 않다가 서귀포중학교 동쪽을 지나는 지점에서 많은 물을 분출한다. 무량정사와 서귀포초등학교 사이에 서면, 물이 하천 여기저기서 물이 샘솟고, 그 물이 모여서 아래로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물은 동홍천 끝까지 흘러 정방폭포을 거쳐 바다로 떨어진다.

이 연못을 예전에는 ‘정모소’라고 불렀다. ‘소’가 연못을 의미하므로 한자로는 ‘정모연(正毛淵)’ 혹은 ‘정방연(正方淵)’으로 표기했다. 정모소는 음이 변해서 ‘정모시’가 됐다.


▲ 평일인데도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사진=장태욱)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기록에 따르면, 이 물은 과거 서귀진 병사들의 식수원이 되기도 했다. 이원조 목사는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다 우물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구멍으로 흘러 보내 서귀진성 남쪽의 밭에 물을 대었다. 당시 수로는 ‘정모시’에서 소암기념관-서귀포자치경찰대-구 서귀포문화원-목성빌라 뒤 등을 거쳐 서귀진성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나카하라(中原)는 이 수로가 지나는 물을 이용해 정미소를 운영한 점이다. 한상봉 작가는 주변 주민의 증언을 인용하며 나카하라는 집 주변에 논밭을 일궜고 자기 집 물레방아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귀포에 전기가 공급되기 전이라 자신이 재배한 쌀을 자신이 생산한 전기를 이용해 도정했다는 것이다.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정모시는 한때 생활하수가 유입되며 역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오수와 우수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하천으로 유입되던 시절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서귀포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 무량정사 아래에서 물이 나오는 장면을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사진=장태욱)

하천으로 생활하수가 유입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물론이고, 멀구슬나무, 담팔수, 광나무 등 340여 그루의 그루를 심어 도심숲을 조성했다. 파고라와 체육시설도 갖췄고, 서복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조성했다. 물과 공기가 동시에 정화되고 경관도 개선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로 자리를 잡았다. 여름 주말이면 주변은 더위를 피해 몰려든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19일 정모시쉼터에서 만난 봉사자는 “이 쉼터를 관리하기 위해 정방동 청년들이 풀베기도 하고 쓰레기도 줍는다. 청년들의 역할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말인 17일과 18일, 500명 넘는 주민이 물놀이를 왔다. 여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정모시 쉼터의 변화는 산림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산림청은 국민 3062명의 추천을 받아 국내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을 선정하고 1일 발표했는데, 거기에 ‘정모시 도시숲’도 이름이 올랐다.


▲ 족욕을 할 수 있는 좁은 수로도 갖췄다. 한 시민이 수로에 물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다.(사진=장태욱)


▲ 서귀포시가 정모시 주변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가꿔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사지=장태욱)

산림청은 도시숲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형 △경제효과 증진형 △경관 개선형 △주민건강 증진형 △주민 참여형 등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선정했는데, 정모시 도시숲은 경관개선형 도시숲 12곳에 포함됐다. 경관 개선형은 녹지공간을 만들고 가꿔서 도시의 미관을 향상시키고 시민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도시숲에 해당한다.

기후위기 시대, 여름철 폭염이 시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난방시설과 자동차열 등 인공열로 도시에선 열섬효과까지 더해진다. 도시민의 건강이 위태로운데, 이를 개선할 방법으로 도시숲이 주목을 받는다. 여름철 폭염에 의한 사망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병원보다 도시숲이 효과적이라는 발표도 나왔다.

맑은 물과 도시숲이 어우러진 정모시 쉼터, 도심에서 나온 뜨거운 열을 식혀준 물이 바다로 떨어져 정방폭포 장관을 이룬다. 정모시가 있어 물이 빚은 도시 서귀포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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