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레게 하는 고래, 이게 제주섬에 온 이유는?

[아카이브]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기억과 기록을 잇다’(1)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관장 박찬식)이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시를 마련했습니다. 5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박물관 특별전시실에 열리는 ‘기억과 기록을 잇다’ 전시입니다. 지난 1984년 5월 24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개장한 지 40년을 맞아 마련한 전시입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수장고와 문서고, 컴퓨터 속에 담긴 기록물과 관련 자료들을 총정리해서 조각조각 흩어진 기록들을 깁고 다듬었다고 했습니다. 방문객들은 기록과 유물이 박물관에 와서 전시되는 과정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설명과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브라이드고래(사진=장태욱)

특별전시를 두 차례 방문해서 관람했는데,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해양종합전시관에 브라이드고래가 전시되는 과정입니다. 양상훈 전 민속자연사연구과장이 그 과정을 증언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래를 가져다준 것은 2004년 발생한 태풍 ‘송다(SONGDA)’였습니다.

2004년 제18호 태풍 ‘송다’는 8월 28일 09시경 괌 남동쪽 약 220Km 부근해상에서 발생했습니다. 태풍은 9월 5일 중심기압 935hpa, 중심 최대풍속 46m/s로 발달했습니다. 다행히 제주도를 피해 9월 6일 21시경에 제주도 서귀포 남남동쪽 약 360 ㎞ 부근 해상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9월 7일 10시경 일본 큐슈 나가사키현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 제주민속자연사박불관 특별전시실에서 '기록과 기억을 잇다' 특별전시가 열립니다.

당시 태풍의 직·간접 영향으로 9월 6일부터 7일까지 국내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기상청은 태풍의 영향으로 제주도 진달래밭에 194.0 ㎜, 경남 양산시 웅상에 212.0 ㎜, 경북 경주시 감포에 203.5㎜의 비가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제주도 고산에 31.3 ㎧의 풍속을 기록했습니다.

태풍은 제주도를 비켜갔기에 직접적인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후 고래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애월읍 하귀리 가문동 해안에 보말을 잡으러 갔던 주민 3명이 주변에서 심한 악취를 느꼈습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썩어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해양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해경은 민속자연사박물관에 연락했고, 양상훈 과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현장을 방문해서 썩어가는 사체가 고래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몸길이 13m에 달하는 브라이드고래였습니다.

고래는 사체를 발견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 박물관은 이들에게 고래 뼈를 기증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들은 선뜻 기증할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물어서 고래 뼈에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 2004년 제 18호 태풍 송다의 진행 경로(사진=기상청)

그런데 박물관 담당자들이 가문동 해안에 가서 고래 뼈를 회수하려는데, 애초에 확인했던 고래 뼈 가운데 일부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직원들이 해안 동네를 살폈는데, 한 주민이 부엌에 고래 갈비뼈 3개와 척추 뼈 2개를 보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척추 뼈는 방석으로, 갈비뼈는 부지깽이 용도로 사용하려고 보관했던 것입니다. 박물관 직원이 설득한 끝에 고래 뼈를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래는 지방이 많은 동물입니다. 뼈에는 죽은 고래의 기름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1년 동안 모래에 묻어 기름을 제거하고, 전문가를 통해 화학적으로 처리한 후에야 뼈의 조각을 맞춰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 한반도 주변에는 고래가 득실됐습니다. 대부분 참고래로 크기가 15~18m, 무게 60~80톤에 이를 만큼 몸집이 컸습니다. 반면에 행동이 느려 포경선이 포획하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했다고 합니다.


▲ 제주도 서귀포 고래공장에 인양된 고래(사진=(사)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일제시대 제주도 사진자료수집보고서』, 2012.)

일본 포경협회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인 1911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의 포경회사들이 한반도 근해에서 포획한 고래 수는 무려 6646마리에 이릅니다. 제주 근해에서 포획한 고래는 통계에 나타난 것만도 337마리입니다. 서귀포도 고래공장이 들어서면서 근대도시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에 그 많던 고래가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20년 전 태풍의 영향으로 고래 사체가 제주도로 밀려 왔습니다. 혹시, 우리바다에 고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전시물입니다.

고래 뼈 전시를 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우리 바다에서 사라진 고래에 대한 연민이자,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거대 포유류에 대한 동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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