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신조선 남영호, 서귀포에 활력 불러왔다

[기억의 재구성, 남영호 참사 ②] 1968년 남영호 취항


해방 이후 제주도와 외부를 연결하는 뱃길을 1960년대까지 끊겨 있었다. 이후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제주도 하늘길과 뱃길이 열렸다. 기선 덕남호(총톤수 280.3톤, 정원 289명)가 1963년 1월 4일 제주항에서 취항해 제주-목포 구간 운항을 시작했다. 이듬해 2월부터는 부산-서귀포 사이를 오가며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 부산에 있던 남영호 매표소



1963년 8월 12일에는 가야호(총톤수 514톤 77, 승객정원 442명)가 목포항에서 취항식을 열고 제주-목포 간 정기항로를 운항했다. 정부는 가야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객선이며, 국내 자금과 국내 기술로 만들었다고 홍보했다. 200톤의 화물도 수용할 수 있어 제주도 물동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1963년 10월 11일에는 여객선 도라지호(총톤수 894톤, 승객정원 580명)가 부산부두에서 취항식을 열고 부산-제주 간 정기항로 운항을 시작했다.


▲ 부산-제주 노선을 운행하던 도라지호(한국정책방송원)

1968년 3월 5일, 기선 남영호가 서귀포-성산-부산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남영상선주식회사(부산시 중구 충무동 소재, 대표 강ㅇ진)는 부산 영도에 소재한 조선소 경남조선공업주식회사를 통해 총톤수 362.04톤, 정원 321명(여객 302명, 선원 19명)의 여객선을 건조해 1967년 12월 31일 진수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 준공을 마쳤다.

남영호가 첫 출항할 당시, 이미 덕남호가 서귀포-부산 노선을 운항하고 있었다. 덕남호는 원래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국 해군에서 건조한 YMS정(야적장급 지뢰제거기)이었는데, 해방 후 여객선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선체와 기관이 모두 낡아 이미 폐선단계에 있었는데, 선주 측이 노후선 대체 계획만 세워놓고 재정사정을 핑게로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었다.

남영호는 취항 후 서귀포와 내륙을 연결하는 운송수산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1970년 겨울에 침몰할 때까지,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며 서귀포에 활력을 불러왔다.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 육지로 물질을 가거나 여행가는 사람들 모두 남영호에 몸을 실었고, 남제주군에서 생산된 감귤와 채소도 남영호를 통해 육지로 내다 팔았다.

남영호는 오후 5시에 서귀포를 출항해 성산포에 기항한 후 저녁 8시 무렵에 성산포를 출항했다. 그리고 밤새 바닷길을 달린 후 다음날 아침에 부산에 도착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침몰사고 이전의 남영호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서귀포항에 정박한 남영호(사진=2006년 남제주군지)

▲ 부산에 있던 남영상선주식회사 사무소

강순배 씨는 해병대에 입대해 포항해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휴가차 집에 오갈 때는 남영호를 탔다고 했다. 강 씨는 “침몰사고가 날 때까지 남영호 운항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라고 “그때 남영호는 우리가 육지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서귀포에서 감귤 수집상을 했던 한영자 씨는 “당시 서귀포에서 육지로 나가는 감귤은 모두 부산을 통했다”라며 “서울이나 대구로 가는 감귤도 부산항에 내린 후 트럭으로 날랐다”라고 말했다. 서귀포에서 나는 특산품을 부산으로 실어 나른 배가 남영호였다.

강성숙 씨는 “1968년부터 서귀포에서 설탕과 식초 도매업을 했다”라며 “남영호가 서귀포에서 출항할 때 남영호 사무장에게 제품 수량을 적고 물건 값과 운임을 주면, 사무장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해 갖고 왔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남영호 사무장이 내가 주문한 대로 부산에서 설탕과 식초를 정확하게 구매해 가져왔는데, 신통했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남영호를 통해 구매한 설탕과 식초를 소분해서 남제주군 일대 가게에 납품했는데, 1970년 남영호가 침몰하면서 장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남영호 선주인 강ㅇ진 씨도 서귀포에서 주민들과 이웃으로 살았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그때 내가 서귀포항에서 남영호가 출항하고 입항하는 것을 보면서 컸는데, 선주 가족이나 배를 타는 승객이나 내게는 다 이웃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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