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도 고목에게도 막걸리는 긍정과 회복의 묘약

[아카이브]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기억과 기록을 잇다’(3)

남원읍 위미리에서 독립서점 북타임을 운영하는 임기수 대표는 최근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서점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는 점입니다. 유튜브와 SNS, OTT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책을 읽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 경기마저 좋지 않아 매출이 떨어지는 건 모든 서점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입니다.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서점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찾는 손님들 가운데 인증사진만 찍고 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서점도 사업인지라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 막걸리는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해 만드는 전통술입니다. 살균과정 없이 마시기 때문에 많은 기능성 미생물을 살아 있는 상태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막걸리에 포함된 효모와 유산균은 다양한 범위의 향균활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사진=장태욱)

어떤 날은 한나절 걱정에 싸여 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저녁이면 한숨은 이내 웃음으로 바뀝니다. 그 신통방통한 비결은 바로 막걸리에 있습니다. 종일 걱정에 싸였던 날도 저녁에 반주로 막걸리 한 잔 마시면 “뭐 있겠냐? 모든 게 잘 될 거다.”라며 긍정모드로 전환합니다. 임 대표에게 막걸리는 삶의 활력소이자 긍정의 묘약입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광장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이 80~90년은 되는 고목인데, 이 나무에게도 막걸리는 기사회생의 묘약이었습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관장 박찬식)이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시 ‘기억과 기록을 잇다’ 에는 막걸리 덕에 회생한 팽나무 고목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김인탁 4대 박물관장이 박물관을 개관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내용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인탁 전 관장은 박물관을 개장할 때 조경을 위해 여기저기서 나무를 구해다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40~50년 생 팽나무를 구해서 광장에 심었는데 심은 지 2~3개월 지나니 나무가 시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는 죽어가는 나무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재래식 처방을 써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인탁 전 관장은 “막걸리를 사다가 설탕하고 섞어서 흙을 발효시키고 나무에 그 흙을 깔아줬더니 그제야 제대로 활착이 돼서 나무가 잘 자라기 시작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막걸리가 죽어가는 나무를 회생시킨 겁니다. 그 나무는 박물관이 개장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든든하게 광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40년 전 개장할 당시 이 팽나무를 심고 죽어가자 막걸리와 설탕을 섞어 흙을 발효시킨 후 나무를 살려냈습니다.(사진=장태욱)

막걸리는 전통적인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해 만든 전통주입니다. 막걸리는 여과 또는 살균 과정 없이 다양한 미생물을 살아 있는 상태로 섭취하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나 기능적인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를 통해 막걸리에서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활성을 가진 균주들이 선별됐습니다. 일부 유산균과 효모의 경우 항균활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막걸리에서 선별된 기능성 미생물과 그 대사산물은 기능성 식품의 소재가 되거나 산업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과수농업에서도 막걸리를 이용해 수익을 높였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막걸리를 섞어서 퇴비를 만들거나, 막걸리를 뿌려서 지력를 강화하고 뿌리를 강화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눈에 드러나지 않게 많은 자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자산 가치를 확인하고 발굴하는 일은 온전히 후대의 몫이라 하겠습니다.

고금리, 고물가로 모두가 어렵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과 막걸리 한 잔 나누면서 희망을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임 대표에게도 팽나무 고목에게도 막걸리는 긍정과 회복의 묘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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