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흥한 가문, 술로 망하나?
[칼럼] 장태욱 대표기자
송재호 국희의원(제주시 갑)의 알코올 중독 이슈가 국회의원 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월 19일에 당내 경쟁자인 문대림 예비후보의 대변인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2월 13일에는 송재호 의원의 전 보좌관이 언론사에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다시 쟁점화됐다. 알콜중독 이슈가 부상하면서 다른 정책은 물론이고, 여당인 국민의힘 예비후보마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렸다. 술의 위력이 세긴 세다.
기자가 문대림 예비후보 측에 확인한 주장 내용이나, 송 의원의 전 보좌관이 발표한 자료 모두 송재호 의원이 알콜 중독으로 의정활동에 지장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송 의원은 ‘술을 마시면 자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니, 술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안타까운 일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가문은 일제강점기 양조사업을 통해 번성했다. 그 중심에는 조부인 송권은(宋權恩 1884~1968)이 있었다. 송권은은 애월읍 하귀리에서 태어나 성산읍 온평리로 이주한 후 다시 표선면 표선리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댔는데, 양조장을 운영하며 큰 부를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부를 일군 것은 좋은 일인데, 그 이면에 일제의 수탈 전략이 스며있었으니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민족이 술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양조장이 등장한 지는 100년 남짓하다. 예전에는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1909년에 주세법이 제정되면서 술 공급 방식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주세법 제1조에는 주류를 제조하는 자에게는 주세를 매긴다고 했고, 제3조에서는 주류를 제조하려면 제조장 1개소마다 정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일제는 조선을 병합한 후 1916년에 기존의 주세법을 개정해 주세령을 발효했다.
일제는 술을 통해 세금을 걷어 들였고, 집에서 술을 빚는 행위를 일체 금지했다. 그 과정에서 술은 산업이 됐다. 양조업은 허가제여서, 조선총독부에게 우호적인 인사 만 양조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양조업자와 일제의 결탁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서귀포사람들]이 아카이브 저널을 표방하다보니, 과거 자료를 찾는 게 필자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과거 자료에서 송재호 의원의 집안과 관련한 자료도 몇 가지 찾았는데, 그 가운데 술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1940년 1월 5일 자 매일신보(每日新報)에는 황기(皇紀) 2600년 새봄(新春)을 축하하는 광고가 2면 하단에 여럿 실렸다.
황기는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의 즉위년을 원년으로 세는 일본의 기년법이다. 진무 천황이 기원전 660년에 즉위했으니, 서기 1940년에 660년을 더하면 황기 2600년이 된다. 일본의 초대 황제가 즉위한 지 2600년이 되는 날을 맞아 축하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었는데, 여기에 송권은과 그가 운영했다는 남창양조소가 등장한다. 광고주 송권은은 ‘제주도 표선항 천일소주 제조원 남창양조소’의 대표로 기록됐다.
남창양조소 광고 오른쪽에는 ‘성산주조합명회사’의 광고도 나란히 실렸다. 술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어야하는 양조업자 입장에서야 일제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을 것이다. 총독부와 가까운 이들은 그렇게 양조업을 통해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총독부의 비위를 맞췄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권당과 그 지지자들이 반대세력을 낙인찍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단어가 있다. 바로 ‘토착왜구’인데, 말은 항상 잘못 사용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단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면 좋겠다.
그리고 송재호 의원을 보면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청소년들 보기도 민망하니, 술을 자제하시오. 칼로 흥해 칼로 망하는 것처럼, 술로 흥한 가문 술로 망할 수도 있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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