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파도에 배 뒤집히는데 “객실에 머물라”는 선내방송

[기억의 재구성, 남영호 참사 ⑥] 날씨 좋고 바다 잔잔한데 중심 잃고 침몰

남영호는 1970년 12월 14일 오후 5시에 서귀포항을 출항해 성산포항에 도착했다. 성산포항에 도착했을 때도 이미 화물은 적재중량을 훨씬 초과한 상태였는데도, 성산포항에서 화물과 승객을 더 실었다. 사고가 뻔히 예견되는 상황인데도 사무장 강O근의 위세에 눌려 선장은 출항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성산포항을 출항한 시간은 14일 저녁 7시55분경이었다.


▲ 사고 직후 내부무가 발표한 남영호 침몰사고 보고자료인데, 사고의 위치가 맞지 않다. 당시 내무부가 지목한 위치라면 성산포항에서 59마일 정도가 맞는데,  성산포항에서 34마일 위치라고 했다. 남영호의 속도로 5시간 넘게 항해한 것을 감안해도 34마일은 맞지 않은 거리다.

배는 성산포항을 떠나 부산을 향해 바닷길을 달렸다. 그런데 남영호는 약 110km를 내달린 후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당시 법무부 장관 배용호가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남영호는 12월 15일 1시 25분경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당시 주소로는 전남 여천군 남면 소리도) 남남동쪽 25km(13.7마일) 지점에서 파도에 부딪쳐 복원력을 잃고 침몰했다.

당시 정부가 남영호 침몰장소라고 지목하는 과정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선 법무부와 내무부가 발표한 위치가 서로 다르다. 법무부장관 배영호는 남영호 침몰장소가 소리도 남남동쪽 13.7마일 해상이라고 했는데, 내부부는 소리도 남남동쪽 26마일이라고 했다.

내부무가 발표한 사고위치가 하백도에서 21마일, 소리도에서 26마일, 성산포항에서 34마일이라고 했는데, 이런 위치는 해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백도 동쪽 21마일이면 성산포항에서 59마일(약 110km) 정도가 맞다. 당시 내무부 자료는 제주경찰서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상 지리에 전혀 무지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풍속은 5~7m, 파고는 1~1.5m로 날씨는 항해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당시 배에 승선했다가 가까스로 생존한 강기정(1947년생) 씨는 “출항할 때부터 바다는 잔잔했고, 달빛은 훤했다. 할아버지 제사가 음력 11월 15일이었는데, 제사 뒷날 내가 남영호에 승선했다. 음력 날짜와 날씨까지 기억한다. 달빛이 바다에 반사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도가 배의 왼쪽(좌현)에 부딪치자 배는 순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중심으로 돌아와 왼쪽으로 기우는 순간 복원력을 잃고 말았다. 배의 왼쪽 갑판으로 물이 차기 시작했고, 결국 왼쪽으로 기울며 완전히 전복하고 말았다. 앞선 기사에서 밝힌 대로 과적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었다. 그리고 화물을 배의 왼쪽에 편중해 실었기에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었을 때 중심을 회복할 수 없었다.

내부부가 사고 직후 발표한 ‘1970년 남영호 침몰사고’ 보고자료에 따르면, 남영호가 침몰 당시 해수온도는 10도, 조류는 1노트(약 시속 1.8km)의 속력으로 흐르고 있었다.


▲ 남영호에 승선했다가 생존한 강기정 씨는 사고 당일 날씨는 좋았고 바다는 잔잔했다고 말했다.(사진=장태욱)

당시, 남영호에는 정원을 초과한 승객이 타고 있었다. 강기정 씨는 “난 군인이어서 3등실에 타고 있었다. 객실에 승객이 너무 많아서 아는 사람이 있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배가 기울자 통로와 객실로 물이 차기 시작했고, 선내는 대혼란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영호는 선내방송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죽을 것이므로 선내에 머물라”고 안내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전복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대처가 이미 1970년에 이뤄지고 있었다.

선내에 머물라는 안내방송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은 배가 침몰한다는 걸 직감했다. 승객들은 객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렸는데, 대부분 승객은 배에서 탈출하지 못해 객실에 갇혔고, 빠져나온 사람들은 배가 기우는 가운데 바다에 떨어졌다. 침몰하는 남영호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맨몸으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음력 11월 17일, 보름을 지난 둥근 달이 남쪽에서 바다를 훤히 비췄다.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 눈에 밀감상자를 비롯해 배에 실었던 화물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겨울바다의 한기가 온몸에 스미는 가운데도 사람들은 밀감상자에 몸을 의지한 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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