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호] 차오른 바닷물 보며 성산포에서 출항 거부한 선장, 그러나..

[기억의 재구성, 남영호 참사 ④] 과적 주도한 실세 사무장, 선장의 의지도 꺾었다

남영호는 1970년 12월 14일, 승객과 선원 210여 명을 태우고 서귀포항을 출항했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승객 30여 명은 승선 신고도 되지 않은 채였다. 배는 화물창은 물론이고 객실과 갑판까지 짐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7시25분에 기항지인 성산포항에 도착했다. 폭풍주의보로 인해 배가 4일간 서귀포항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성산포항에도 많은 승객이 배를 타기 위해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남영호 희생자 추모제(사진=장태욱)

거기에서 승객 100명이 승선했다고 됐지만, 사고가 난 후 유족 신고로 22명이 신고 없이 승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산포항에서 탑승한 승객이 소지한 화물도 6톤에 이르렀다. 승객들은 소지한 화물을 배의 오른쪽 갑판에 실었다.

야간이라 선장 강ㅇ수는 손전등을 들고 선미(배위 뒷부분)를 비춰봤는데, 배의 건현(freeboard)이 30~40㎝에 불과했다. 남영호의 법정 건현은 192㎝였다. 짐을 최대한 실어도 해수면에서 갑판까지 길이 192cm이상은 확보해야 하는데, 짐을 너무 많이 실은 나머지 배가 너무 깊이 잠겨버린 것이다. 상식이 있는 선장이나 항해사라면 배가 출항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 선장은 즉시 사무장 강ㅇ근을 불러 이대로 출항할 수 없음을 알렸다. 강 선장은 “배를 성산포항에 고박하라. 출항하고 싶으면 배에 실은 짐을 풀라”라고 지시했는데, 사무장 강ㅇ근은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강 선장은 “그럼 내가 배에서 내리겠다”라고 말한 후, 실제로 배에서 내렸다. 만약, 그때 사무장이 선장의 지시대로 화물 일부를 하역했거나 강 선장이 끝까지 출항을 거부했다면,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남영호 희생자 추모문화제에서 한 무용가가 진혼무를 드리는 장면(사진=장태욱)

그런데 그 중요한 상황에서 선장은 소신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사무장은 선장을 붙들고 배를 출항하자고 종용했다. 마음이 약해진 강 선장은 선원들의 뜻에 맡기겠다며 선원 전원을 갑판에 불러 모았다. 강 선장이 출항 여부에 대해 선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선원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시 법무부의 보고에 따르면, 선원들은 사무장 강O근의 서슬에 눌려 있었다.

법률 상으로는 선장은 선주의 법적 대리인으로 배의 안전과 관련해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현실은 법률과 다른 경우가 많다. 선주는 이익을 생각하고 배의 안전을 가볍게 생각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배의 안전을 위해 선장이 원칙을 지키려 해도 선주의 입김으로 그 의지가 무력해지면, 파도 위에서 배의 안전을 지휘할 주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선박 사고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남영호 참사도 선장이 원칙을 지킬 수 없도록 가시적, 비가시적 압력이 작동한 게 문제였다. 당시 법무부 발표로는, 선주인 강ㅇ진은 4일 동안 삼우운수 직원들이 짐을 싣는 과정은 물론이고, 과적 때문에 선장이 선원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까지 조용히 지켜봤다. 선주가 지켜보는데, 선원에게 선장의 지시가 먹힐 수 없었다.

성산포에서 선장이 선원을 모아놓고 출항 여부를 물었을 때 선원들이 사무장 강ㅇ근의 눈치만 봤다는 데서, 배에서 실권이 선장보다는 사무장에게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남영상선주식회사는 배와 선원, 승객의 안전을 확보할 만한 조직 기강이 서 있지 않은 회사였다.

눈치를 살피던 강ㅇ근 사무장은, 선원들이 출항을 거부할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 후 선장에게 “날씨도 살살 가봅시다”라며 출항을 종용했다. 선장은 이대로 떠나면 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사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강 선장은 저녁 7시55분,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고 그 위를 배가 무사히 건너기를 바라며 성산포항에서 남영호의 닻줄을 풀었다. 출항할 때만 해도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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