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고립됐는데 귤나무 눈 털러 온 삼춘, 어쩌려고?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⑮] 지금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농부

제가 7년동안 제주에서 제주 사람들과 귤따러 다니다 보니, 친하게 지내는 제주 아저씨께서 “키라야, 올해 귤밭 하나 해볼래? 내가 도와줄게.”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단번에 거절했지요.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농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하는 동업이라고 들었습니다.

책방을 하기 전, 일본 홋카이도로 우프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wwoof 우프 :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제도) 제주에서 뭘 하면서 살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제주 귤이 일본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듣고, 일본에 가서 귤에 대해 무엇이든 배워보려고 일본 와카야마 귤농장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를 끌어당기는 곳은 귤과 전혀 상관이 없는 홋카이도였습니다.


▲ 후카이도에서 감자를 심기 위해 마련한 씨감자(사진=키라 이금영)

홋카이도에서 머물렀던 유기농가는 자급자족의 ‘끝판왕’으로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집이었습니다. 화목난로로 난방을 하고 샤워할 물을 데우고, 계곡물을 끌어다 물을 정수해서 사용하고,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그런 집이었지요. 제가 하는 일은 볍씨에 매일 하루에 2번 물주는 일, 그리고 감자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씨감자를 저울로 재고 알맞게 잘라서 햇볕에 말리고, 땅을 갈고 감자를 심는 일이요.

문장으로 쓰니 참 쉬워 보이네요, 엄청 힘들었는데 말이죠. 그때 그곳에서 보낸 2주 동안 알게 된 사실은 제가 그동안 너무 쉽고 편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매번 마트에서 예쁘게 진열된 채소들만 보았으니, 이 채소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누가 길렀는지 알 리가 없었죠. 작물을 키우기 위해 농부의 수많은 발걸음이 흙을 밟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을 텐데 말이죠. 그때 잠깐의 경험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과 채소가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농부’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수확한 작물. (사진=키라 이금영)

▲ 키라의 제주어멍의 수확(사진=키라 이금영)

그렇게 제주에 돌아와 귤농사를 짓는 천상 농부들 틈에 살고 있습니다. “키라, 밭에 가장 좋은 거름이 뭔 줄 알아?”라고 물으시면 “발거름 이요?” 라며 웃었습니다. 그러면 “앗, 어찌 알았지?”라고 답하는 아저씨들의 유치한 아재개그도 제법 받아칠 만큼 여유가 생겼나봅니다. 농부의 발걸음이 농사를 짓는데 얼마나 중요한 거름인지 이제 누구보다 잘 알지요.

몇 년 전, 제주에 폭설이 내리던 겨울날, 비자발적 고립상태로 집에 머물 때였습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데, 철없는 육지사람은 눈이 내리는 걸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헤헤거리고 있었지요. 이때 귤밭은 눈으로 인해 발이 폭폭 빠질 정도로 이게 귤밭인지 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답니다. 부엌에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집으로 들어옵니다.


“헉!!! 어떻게 온 거???” 키라네 제주어멍 주인삼춘입니다.
“버스타고 내려서 걸어서 왔지.”
​“왜 온 건데요?”
“귤나무가 눈 때문에 무거워서 힘들까 봐. 눈 털러 왔주게.”


저는 그 자리에서 얼음!!! 아니,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눈 털어봤자 또 쌓일 텐데 말이죠, 위미에서 신흥리가 어디라고 오늘같이 눈이 많이 오는 날 여길 오느냐고 했지요. 키라네 제주어멍 주인삼춘은 “그럼 어떻게 하냐! 안 그러면 나뭇가지 다 찢어진다게.”라며 가방에서 묵은 김치와 생선을 꺼내서 건넵니다. 이걸로 김치찜 해서 점심 먹으라면서 자신은 귤밭으로 향합니다. 그러면서 사진 찍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 귤나무 눈 털어내는 거는 사진 찍어 달랍니다. 그렇게 한참을 귤밭에서 눈 털고 와서는 사진 찍은 거 자식들한테 보내달라고 합니다. ‘니네 어멍 이렇게 고생한다’라고요.


▲ 폭설이 내려 사방이 막힌 날에 제주어멍은 이 눈을 털러 나타났습니다.(사진=키라 이금영)



이런 농사의 진심인 진짜 농부의 태도와 자세를 이제 귤 따기 7년차인 제가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요? 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 정성을 다하고, 귤 딸 때도 나무 죽는다고, 나뭇가지 조심해서 귤 따라고 하시는 찐 농부.
“키라야, 땅은 거짓말 안 해. 내가 정성들인 만큼 내게 수확의 기쁨을 가져다주거든.”이라 말해주던 키라네 제주어멍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분들의 수고로움이 없었으면 제가 어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어요?
오늘도 새벽부터 귤밭에 가서 하늘을 살피고, 흙을 밟으며, 나무를 들여다보는 농부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합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 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갑니다.
이 글은 책<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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