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호수 아래 이처럼 어여쁜 난초 키운 건 쏟아지는 낙엽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5-②) 물영아리

나뭇잎과 묵은 가지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물영아리오름은 지난 회 이야기처럼 람사르습지 사이트다. 만들어진 과정이 독특하고 주변 경관 또한 수려하다. 오르고 내리는 탐방로가 아름다운 숲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한테 인증되었다.


▲ 물영아리 근처 목장에 자생하는 비목나무(사진=김미경)

오름을 오르기 전 초입부터 시원한 목장을 볼 수 있다. 새롭게 야자매트를 깔아 놓아 이곳까지는 교통약자들도 이용할 수 있다. 목장에는 수망리마을 사람들이 방목해 놓은 소들과 야생노루, 꿩 등 야생동물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을 들어서자 마자 진한 ‘상산’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사람들은 더덕향이라고 말하지만 향기는 그 사람의 경험한 냄새를 가지고 이야기 하기에 어떤 냄새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상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향기따라 주변을 돌아보며 발견한 꽃모습에 더 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다닥다닥 연노랗게 달린 비목나무의 꽃들도 바라보며 이게 암나무일까 수나무일까 구분도 해본다.

오름입구, 삼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 최근 나무계단도 새롭게 정비되었다. 급경사인 탐방로를 올려다보면 마치 어느 출렁다리를 보는 듯하다. 이곳을 올라야 정상 습지에 다다를 수 있으니 힘듦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건이다. 빽빽이 들어선 삼나무 인공림은 숲가꾸기를 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았던 숲을 조금은 열어놓았다.


▲ 상산(사진=김미경)

이곳 삼나무에서 생산되는 나뭇잎이며 묵은 가지들이 연중 쉴 새 없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내려 쌓인 낙엽은 어느 순간 이불처럼 두꺼운 부엽토 층을 만들어 낸다. 한여름에는 여기서 분해되어 뿜어내는 향기가 숲 안에 가득 찬다. 침엽수림 밑에는 대부분 다른 식물들이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생긴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기에 숲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보다.
국내 처음 이곳에서 발견된 영아리난초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영아리난초가 발견되었다. 발견한 곳의 지역명을 붙인 이름이다. 김찬수 박사를 비롯한 제주도 학자들에 의해 2007년 한국식물분류학회지에 ‘우리나라 미기록 식물: 영아리난초(난초과)’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 난초는 네르빌리아 니포니카(Nervilia nipponica)라는 학명을 가진 식물이다. 우리나라 식물자원이 1속 1종이 늘어난 것이다. 영아리난초는 당시 일본, 타이완, 그보다 더 남쪽으로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북한계선이 이 발견으로 제주도가 되었다.


▲ 물영아리는 다양한 난초를 품었다. 사진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금새우난-새우란-영아리난초 개화-영아리난초 잎(사진=김미경)

이 난초는 영아리오름 바로 탐방로 주변에 자라는데, 두꺼운 삼나무 잎이 쌓여 만든 부엽토 깊숙이 지하줄기가 자라다가 봄이 되면 푸른 잎을 땅 위로 내민다. 잎은 홑잎으로 나오고 주름이 있다. 어느 정도 자라면 꽃대가 올라오고 여기서 하나의 꽃이 핀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서서히 잎은 사그라진다. 몸이 전체적으로 작고, 관찰이 가능한 기간도 짧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특히 꽃과 꽃줄기의 색깔이 마치 보호색인 듯 삼나무 낙엽 색깔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새우난초 무리

이 주변에는 각종 새우난초 무리도 보인다. 4월 하순에서 5월 중순이 제철이라고 한다. 정상을 거쳐 반대 방향으로 하산하는 숲속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최근에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주변에 금새우난초가 무리 지어 탐방객을 맞이 한다. 금새우난초는 꽃줄기가 30~50㎝ 정도로 자라고 꽃의 크기도 직경 3~4㎝로 국내에 자라는 난초 중에는 대형에 속한다. 이런 풍만한 몸매에서 노란색으로 일시에 피어나는 모습은 탐방객의 눈길을 끌게 만든다. 금새우난초와 더불어 크기는 다소 작지만 새우난초도 섞여서 핀다. 이 난초는 연한 자주색 또는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으로 핀다.


▲ 야자매트와 영아리난초 꽃(사진=김미경)

웅장함과 함께 신비감마저 느끼게 해

조금 더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어느새 인공의 삼나무 숲은 천연의 낙엽활엽수 숲으로 바뀐다. 간간이 새덕이, 참식나무 같은 상록성의 나무들도 보이고 서어나무, 산뽕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진다. 누가 다듬어 주거나 솎아주지 않았는데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함께 자란다.

숨을 헐떡이며 정상을 향해 오르다보면 세군데 휴식공간이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길 바란다. 큰 숨을 쉬며 상쾌한 공기와 다양한 새소리 등 조건 없이 주는 숲의 혜택을 맘껏 느꼈으면 한다. 이곳 정상은 원형분화구를 가지고 있지만 탐방로를 벗어나 둘레를 돌아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화구 안으로 내려갈 수 있다. 람사르습지 사이트로 지정된 특별한 진짜 모습을 한눈에 맞이한다.

화산으로 만들어진 분화구의 호수, 아마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은 오름 정상에 넓은 호수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한 모습에 더 특별해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전체 면적의 10분의 1 정도만 물이 고였다. 담수를 보려면 5월 이후 장마가 시작되면 볼 수 있다고 이곳에 상주하시는 해설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물안개가 자욱한 이곳을 찾을 기회가 생기면 좋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산정화구호의 특별함을 맛볼 수 있다. 원형의 분화구 내벽이 웅장하고, 둘레에 온대의 나무들로 꽉 찬 분화구에 들어서면 웅장함과 함께 어떤 신비감마저 느끼게 된다. 지난해에 자란 세모고랭이며 고마리 같은 수초들이 회갈색의 낙엽 색깔을 하며 호수 가득 누워있다. 진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게 하는 오름이 바로 이 물영아리오름이다.

물영아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988-11
표고 508미터 자체높이 128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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