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제 결과만 기다렸는데 발표 직전에 폭발, 남동생 바지 못 버렸다

[전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12.3 내란이 쉽게 진압되지 않는다. 많은 권력기관이 내란에 동조했던 터라 시민의 힘으로 이를 진압하는 게 쉽지 않다. 많은 시민이 불안에 시달리고 잠을 못 이룬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란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보스니아-헤츠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비극을 겪은 역사로 유명하다. 1992년 소위 사라예보 봉쇄전(Siege of Sarajevo)이 발발하면서 많은 주민이 사망하고 집을 떠났다. 전쟁은 어린이와 여성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 당시 어린이들이 겪은 상처를 알리는 전시가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 전시장 입구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제주 전시가 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 보스니아 ‘전쟁 유년 박물관(War Childhood Museum), 서울역사박물관과 함께 전시를 기획했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일당이 내란을 일으킨 12월 3일 전시가 개막했는데, 오는 5월 6일까지 이어진다.

보스니아가 위치한 유럽의 발칸반도는 민족과 종교가 다양해 분쟁이 잦은 지역이다. 역사적으로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 2차 대전 이후 이 지역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등 6개 나라를 합해 유고연방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1980년 티토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유고연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방을 구성하는 국가의 종교와 민족이 다양하고 서로 달라서 민족 간 갈등이 심화됐다. 이후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는 흐름 속에서 유고의 사회주의 체제도 흔들렸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 연방을 탈퇴해 각자 독립을 선언했는데, 유고연방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세르비아는 무력 진압을 결정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 슬로베니아 공화국·크로아티아 공화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1992년 보스니아 공화국도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보스니아 안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 계 주민이 반발했다. 이들은 세르비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유고연방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스릅스카 공화국을 선포하고 1992년 4월 5일에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공격했다. 세르비아계 반군은 사라예보를 탈환하기 위해, 보스니아 정부군은 사라예보를 수성하기 위해 폭격을 주고받았다. 4년 가까운 기간, ‘사라예보 봉쇄전’이라고 불리는 내전이 이어졌다.

당시 사례예보의 인구는 약 30만 명이었고, 그중 어린이는 약 6만2000명이었다. 소아과 의사나 아동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라예보의 어린이들은 포위 공격으로 잔혹한 학대와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 보스니아의 ‘전쟁 유년 박물관’이 보유한 수집품 37점이 제주에 왔다. 사진은 어린이 음악제에서 우승한 어린이가 입었던 청바지다. 어린이는 음악제에 참가하고 달력에 결과 발표일을 표시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발표 전에 포탄이 터져 사망했고, 어린이는 장례일 다음 날에 우승자로 선정됐다.

보스니아의 ‘전쟁 유년 박물관’은 사라예보 봉쇄 중에 성장한 어린이의 기억을 기록하고 보관한다. 보스니아 전쟁(1992-1996)과 관련해 개인이 기부한  5,000개 이상의 물건이 수집됐다. 옷, 운동화 책, 편지, 오래된 사진, 장난감, 비디오 증언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쟁 유년 박물관'이 수집한 소장품 가운데 37점이 전시를 위해 제주에 왔다. 13일에 전시장을 찾았는데, 전시품을 보고 안내문을 읽다보니 가슴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연민을 자제할 수 없었다. 그중 구멍 난 아디다스 모자, 어린이 음악제 우승자가 입었다는 청바지, 아이가 지니고 다녔다는 어린이 경찰증 등은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를 어렴풋하게 나마 가늠하게 한다.

■ 아디다스 모자

1982년 생 고란이 쓰고 다니던 모자다. 1994년 1월 22일, 겨울이라 고란은 모자를 쓰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런데 수류탄 두 발이 터졌고, 고란은 아파트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폭발음과 함께 유리창 파편이 쏟아졌고, 얼굴이 피범벅이 됐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같이 놀던 친구 6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구멍 난 아디다스 모자에 난 구멍은 당시 참사를 상징한다.


▲ 어린이는 모자를 쓰고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폭탄이 터졌다. 그 일로 친구 6명을 잃었는데, 본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살아남았다.


■ 어린이 음악제 우승자의 청바지

1975년생 야스민이 기증한 소품이다. 야스민과 남동생 이르판은 이란성 쌍둥이다. 아르핀은 어느 날 음악제 지역 예선에 출전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프핀은 작은 달력에 결과 발표일을 표시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1992년 11월 어느 날, 포탄이 집 근처에 터졌다. 집은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아르판은 목숨을 잃었다. 가족은 아르판을 묘지에 묻었는데, 다음날 아르판이 우승자라는 결과가 발표됐다. 가족은 아르판이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버리지 못했다.

■ 어린이 경찰증

1982년 생 야스나가 기증한 오빠의 소품이다. 야스나의 쌍둥이 오빠가 어린이 경찰관에 선정돼 배지를 받았다. 오빠가 경찰증을 받은 날에 수류탄이 터졌고, 오빠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오빠는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배지를 하루 밖에 착용하지 못했다. 야스나는 오빠를 생각하며 배지를 25년 동안 지갑에 넣고 다녔다.


▲ 어린이 경찰증. 가족은 아이가 어린이 경찰증을 받은 걸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배지를 받은 날 수류탄이 터져 사망했다. 누이동생은 오빠의 자랑스러운 소품을 소장하고 있다가 박물관에 기증했다.

보스니아 내전은 유엔 평화유진군과 나토군이 투입된 이후에 가까스로 종전에 이르렀다. 1995년 12월 14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쟁이 막을 내렸다. 이후 보스니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과 스릅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이 1국가 2정부 체제를 이뤘다. 중앙정부는 세 민족을 대표하는 3인의 대통령위원회와 연방의회를 통해 운영된다.

그런데 발칸인사이트(BALKANINSIGHT)는 14일 오전, 최근 보스니아에서 다시 긴장이 조성된다는 내용의 뉴스를 보도했다. 13일 밤, 스릅스카 공화국 국회가 군대와 사법부 등 별도의 기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헌법 초안을 채택했다.

보스니아에서 평화 협정의 이행을 감독하는 OHR(인도 인권 인권 위원회) 고위 대표 사무국은 해당 법안에 대해 "이 법안은 데이튼 평화 협정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헌법적 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보스니아에서 과거 내전을 일으켰던 세력이 다시 무장을 계획하고 나서면서 발칸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내전은 큰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재발할 위험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남의 나라 역사지만, 현재 우리에겐 12.3 내란을 제대로 청산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가 갖은 의미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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