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데 진한 꽃향기, 이 바다에 서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주말엔 꽃] 대포동 해안 감국

서귀포의 노지문화, 그거 버려진 섬에 피어난 꽃이다. 노지문화 전시관을 야생화가 진한 빛깔과 향기로 응원한다. 그 꽃이 있어 겨울이 이곳에 근접하지 못한다.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가 11월 9일 대포동 옛 전경초소에서 노지문화전시를 열었다. 과거 방어시설로 활용되던 공간인데 그동안 쓰임이 없다가, 문화도시센터가 5년 동안 이룬 성과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대포동 옛 전경초소 남쪽 벼랑에 감국이 노랗게 피었다.(사진=장태욱)

해안 초소로 활용되던 건물인 만큼,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바다가 눈앞이다. 뒤로는 한라산이 우뚝 버티고, 눈앞에는 태평양이 드넓게 펼쳐지는 곳. 전시공간으로 이만한 곳을 찾기도 어렵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는 역사의 비극을 간직한 곳이다. 100년 전, 조선우선주식회사(朝鮮郵船株式會社, 이하 조선우선)이 운영하던 ‘함경환’이 이곳 바다에서 참사를 일으켰다.


▲ 해안에서 바라본 한라산(사진=장태욱)

조선우선은 1920년대에 총 14개의 항로를 운항했는데 그중 하나가 제주-오사카 노선이다. 1924년 함경환을 처음으로 이 노선에 투입했다. 함경환은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승객을 태운 후 오사카로 향했다. 당시는 부두 접안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작은 종선으로 승객을 운반해 본선에 태웄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종선이 함경환에 도착한 순간 파도가 높게 일어 종선이 침몰하고 말았다. 종선에 타고 있던 48명 가운데 23명만 구조되고 25명이 익사했다.

전시장 앞뜰에는 시비(詩碑) 한 기가 서 있는데 김순이 시인의 ‘대포해안에서’가 새겨졌다. 시는 4연 첫 번째 행에 ‘신들의 발길은 대포해안으로 향한다’고 선언한다. 시인의 말대로 대포 바다는 성난 파도를 따라 신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다.


▲ 겨울이어도 이곳은 늘 따뜻하다.(사진=장태욱)

시비 건너 남쪽은 바로 벼랑인데, 바다에서 이곳으로 늘 바람이 몰려온다. 바람에 얼굴을 맞대고 서 있으면 강한 향기가 바람을 따라 코로 스민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때늦은 국화향이라니.

벼랑에 내려가 보니 그야말로 노란 꽃잔치가 펼쳐졌다. 감국이 주변에 드넓게 자상하는데, 계절을 잊은 듯 노란 꽃잎을 활짝 펼쳤다. 진한 향기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어디서 왔는지 꿀벌이 꿀을 빠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감국이 잔치를 벌이는 해안 벼랑 아래에 서니, 인근 전경초소와는 온도가 다름을 느낀다. 햇살이 주변 바위와 자갈을 데워주기에 겨울이 감국에게는 근접하지 못하나 보다.

감국은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의 한 종류다. 그러니까 산국과 벌개미취, 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 해국 등과는 사촌지간이다.


▲ 계절을 잊은 꿀벌이 꿀을 빨고 있다.(사진=장태욱)


감국은 국화과 국화속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습지, 농경지, 해안가, 산기슭 초지 등 다양한 곳에 서식한다. 줄기는 갈색으로 가늘고 긴데 곧게 서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자란다. 꽃이 피는 시기는 충남과 경북이 10월 하순, 경남이 11월 초순, 제주 11월 하순이다. 국화가 가을에 피지만 제주도 감국은 가을의 막바지에 핀다.

감국은 노란 꽃과 진한 향기가 내뿜는 매력이어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게다가 감국이 함유한 물질이 항염증, 항산화, 항암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방재나 건강식품 원료로도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때늦은 감국이 서귀포 노지문화전시관 주변을 노랗게 수놓고 있다. 서귀포 민초들이 땅방울로 일궈낸 문화를 진한 빛깔과 향기로 응원하는 듯하다. 이 꽃이 있어서 전시관도 바다도 빛을 발한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