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로 알고 캐먹은 게 사삼(沙蔘), 이게 약인가 독인가?

[주말엔 꽃] 잔대

며칠 전 들판으로 나들이 갔는데, 식물을 채집하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가늘고 긴 줄기가 무릎 높이까지 솟았는데, 줄기에 연보라색 종 모양의 작은 꽃을 매달고 있다. 어르신을 그 꽃 모양으로 식물을 확인하고, 줄기의 굵기로 뿌리의 크기를 가늠한다고 했다. 캐낸 식물의 뿌리가 묵직한 만큼, 어르신 표정에도 만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어르신은 도라지를 캔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잔대를 캤다.(사진=장태욱)

어르신께 무슨 식물을 캤는지 여쭈었더니 도라지를 캤다고 했다. 도라지?

도라지는 초여름에 피고 꽃이 이것보다 훨씬 크다. 아무리 봐도 도라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했는데, 어르신이 캔 식물은 잔대다.

아무튼 어르신은 이 식물을 도라지라며, 나빠진 기관지를 치료하기 위해 수십 년간 캐서 먹었다고 했다. 젊어서 담배를 많이 피운 게 후회가 된다는 말씀도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잔대의 꽃. 보라색 꽃통이 줄기에 매달렸는데, 암술이 꽃통 밖으로 나와 있다.(사진=장태욱)

잔대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꽃을 피운다. 종모양의 꽃통 밖으로 암술이 길게 나온 게 특징이다, 작은 수술대 5개가 꽃통 안에 있다. 꽃 모양 만큼이나 애처로운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 어느 여인이 결혼했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셋을 낳았다. 시어머니 등살에 남편은 씨받이를 통해 아들을 얻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를 갈수록 심하게 구박했다. 견디지 못한 여인은 딸 셋과 함게 강물에 몸을 던져서 죽었고, 사람들은 불쌍한 이들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다. 그리고 이듬해 그 무덤가에 연보라색 꽃이 대롱대롱 매달려 피었다.


▲ 잔대의 줄기. 어르신은 잔대의 줄기로 뿌리의 크기를 가늠했다.(사진=장태욱)

잔대는 우리나라 들판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나 자생하는 식물이다. 무덤가에 피었다는 것도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줄기는 식용으로, 뿌리는 약재로 활용된다. 줄기와 잎은 나물로 먹는데, 특히 새싹은 순하고 담백하여 좋다. 약효가 있는데, 특히 뿌리는 사삼(沙蔘)이라 불린다. 뿌리는 도자리 만한데, 사포닌과 이눌린 성분이 포함됐다. 사포닌이 함유됐으니 도라지와 같은 맛이 났을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잔대는 감기는 물론 가래가 끓고 심한 기침이 나오며 숨이 차는 증상에 좋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목안이 아프고 목이 쉬는 등의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 하니, 어르신의 판단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 잔대(사진=장태욱)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잔대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잎에는 페놀화합물 중 갈산, 에피카테킨, 클로르겐산, 루틴 등 13종의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클로로겐산은 세포 노화의 주원인인 활성산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항산화 역할을 하며, 체지방 감소, 항염, 항암 등의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에피카테킨은 항산화 역할 외에도 암이나 동맥 경화,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르신은 아픈 기관지를 개선하겠다고 잔대를 캐어 복용했지만, 기대 이상의 다른 효능까지 보았을 수도 있다. 자연이 우리 주변에 참으로 많은 신비를 감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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