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마다 석주명 이름 내걸고 나무는 왜?

[현장] 석주명 선생이 심은 동백나무, 기계톱에 잘려

영천동이 석주명 선생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석주명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동백나무를 베어 버렸다. 동백충(차독나붕 애벌레) 피해가 자주 발생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인데, 서귀포시와 영천동이 석주명 선생을 대하는 태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석주명 선생은 나비박사로 알려졌지만, 제주학에 몰두한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1943년 4월에 경성제대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에 부임한 후 1945년 5월까지 2년 1개월 동안 서귀포에서 생활했다. 그 기간 제주의 자연과 민속에 깊이 매료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백나무였다. 유고집 「제주도수필」(1968)에 나오는 내용이다.


▲ 동백나무가 잘려 나간 현장(사진=장태욱)

‘동박낭은 동백나무(椿)인데, 제주도에서도 남부 특히 신·하효리에 많다. 그 부근 즉 상·신·하효리 및 토평리에 이 동박낭을 많이 심었는데, 30년만 지나면 한국의 동백나무 명소가 되어 자손에게 큰 유산이 될 것이다. 아열대식물인 상록수의 홍화(紅花, 붉은 꽃)가 겨울에 눈 쌓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하고 만발한 광경은 한국적 경치라고 할 수 있다.’

석주명 선생은 부임 이듬해인 1944년 봄에 제주도 시험장을 둘러싼 1230미터 돌담 안쪽에 1미터 간격으로 동백나무 1230그루를 삽목했다. 주변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당시 나무 대부분이 사라졌고 몇 그루는 남아서 고목이 됐다. 대표적인 게 영천동주민센터 남쪽에 있던 것이다.


▲ 잘리기 전 나무의 모습(2021년 촬영, 장태욱)

▲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 관사 동쪽 경계 안쪽에 동백나무 몇 그루가 남아 있다.(사진=장태욱)

오랜 기간 석주명 선생을 연구해온 제주대학교 윤용택 교수는 “당시 생약연구소 북쪽 경계가 영천동주민센터 남쪽을 지났다. 클린하우스가 있는 곳에 자라던 동백나무는 위치로나 나무 크기로나 석주명 선생이 심은 게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영천동이 최근 그 동백나무를 톱으로 잘라버렸다. 동백나무는 밑동만 남았고 주변엔 쓰레기가 흩어져 있다.  지역 문화유산을 대하는 서귀포시와 영천동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와 관련해 영천동 관계자는 “우리가 자른 게 맞다. 동백나무에 동백충 때문에 잘랐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곳에 클린하우스가 설치된 후 주민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동백충 알레르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119구급대에 실려 가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영천동에서도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백충 피해를 입는 주민이 많아져 나무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반복해서 제기되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 영천동이 석주명 선생을 기념해 건립한 나비문화센터와 목공방(사진=장태욱)

▲ 영천동은 석주명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한다.(사진=장태욱)

이 관계자는 “이 나무는 관리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관리하는 나무도 아니다. 오홍부 위원장(영천동주민자치위원장)도 처음엔 반대했는데, 결국 나무를 제거하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일제가 중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으로 잇단 전쟁을 일으키던 와중에 경성제국대학은 제주도에 자생약초가 많이 자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1941년, 서귀면 토평리에 2만2000평 규모로 제주도시험장을 설립했다.

석주명 선생은 1943년 4월에 이곳 책임자로 부임해서 1945년 5월까지 2년 1개월 동안 서귀포에서 생활했다. 그 그간 생약을 재배하고 실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주도의 역사와 민속, 언어 등에 관해 깊이 연구했다. 그 결실이 제주도총서 6권으로 남아 있다.

영천동은 그동안 나비박사이자 제주학의 선구자 석주명 선생이 지역에서 연구했던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주진했다. 집집이 나비 우편함을 보급했고, 농식품부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나비문화센터와 목공방도 건립했다.

그 와중에 영천동은 석주명 선생이 심은 나무를 기계톱으로 베어 버렸다. 나무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석주명의 이름을 내건 껍데기 사업은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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