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왕님이 야속허댄” 심방 한 마디에 쌓이는 지폐들

성산한마음민속회 창립 15주년 기념 문화공연 21일 열려

‘느영나영 함께하는 전통민속문화공연’이 21일 오후 2시, 서귀포시 동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렸다. 당초 성산일출봉 야외공연장에서 열리기로 계획됐던 행사인데, 비바람이 심해져서 급하게 장소가 변경됐다. 제주성산한마음민속회(회장 문경옥)가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인데, 김경범 성산읍장과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현기종 도의원 등을 포함해 많은 주민이 참석해 행사를 관람했다.


▲ 요왕맞이굿(사진=장태욱)

이날 많은 단체의 공연이 이어졌는데, 주관단체인 제주성산한마음민속회가 요왕맞이굿을 첫 번 무대에 올려 관객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요왕맞이굿은 신을 맞이하기 위해 길을 닦는 의식이다. 심방은 잎이 푸른 대 12개를 두 줄로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의 길을 바다의 용왕을 맞는 길이라 한다. 용왕이 편히 올 수 있도록 풀을 베고 땅을 고르는 과정이 굿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 요왕질치기 장면(사진=장태욱)

우선 심방이 객석을 향해 인정을 요구하는 다소 익살스러운 장면으로 굿이 시작한다. 심방은 애절하고도 구성진 목소리 “오늘은 성산한마음민속회 창립 15주년 제사를 여러 자손님들이 와신디, 인정이 야속허다.”라며 푸념하듯 소리를 했다. 그리고 “오늘 도의원님들, 읍장님들, 단체로 와신디 우리 요왕님 야속허댄 햄신디”라고 말한 후 “앞에 왕 인정이나 보태봅써.”라고 바람을 잡았다. 굿을 공짜로 보지 말고 관람료라도 조금씩 보태라는 말이다.

심방의 요청에 앞에 앉았던 인사들이 지갑을 열고 돈을 꺼냈다. 그리고 어느덧 상에 5만원권, 1만원권 지폐가 수북이 쌓이자 심방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맙수다, 고맙수다. 우리 요왕님 흐믓허쿠다. 요왕님 인정도 받아시난 흐믓허쿠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요왕질치기’ 의식이 시작됐다. 징과 장구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면, 심방은 신칼치메를 흔들며 도포차락 휘날릴 정도로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낫으로 해초를 베는 의식을 수행했는데, 질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질치기에는 해초가 무성해서 낫으로 베고, 벤 해초류를 작대기로 치우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물매로 깨고, 삼태기로 돌을 치우는 과정이 이어졌다. 해녀들은 농업과 물질을 겸하고, 바다도 밭으로 여겼기 때문에 질치기에 밭을 일구는 것과 같은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다.


▲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용왕을 맞는 장면(사진=장태욱)


질치기 과정이 끝나자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며 요왕을 맞았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객석에 앉은 관객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호응했다.

굿이 끝나고 심방이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사실 난 진짜 심방은 아니우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박수와 함께 웃음소리가 퍼졌다. 제주성산한마음민속회는 민속보전을 위한 단체이고, 심방 역을 맡은 고경석(58년생) 씨도 민속회의 회원 가운데 한 명이다.

공연이 끝나자 고경석 씨를 따로 만났다. 고 씨는 “나는 삼달리에서 밀감농사를 짓는 농부”라며 “민속회에 가입한지 3년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원들은 홍송월 선생에게 지도를 받으며 민속회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 공연을 위해 지난 8월부터 바닷가 모여 많은 연습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산읍에 이런 민속공연 연습을 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성산읍이 그런 면에서 조금 낙후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도무용협회의 어우동춤 공연(사진=장태욱)


성산한마음민속회는 이후에도 영주십경가, 앉은반사물, 해녀 노젖는 소리, 웡이자랑, 멜 후리는 노래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초청공연으로 어우동춤(도무용협회), 진도북춤(무용협회), 성산리 난타, 일출색소폰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다.

제주성산한마음민속회는 지난 2009년 10월, 창립해 이듬해 전국 주민차치센터 문화동아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전국 무대에서 발군의 솜씨를 자랑했다. 현재 3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 민속회를 응원하는 주민들이 기름떡과 상외떡을 만들어 손님들을 대접했다.(사진=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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