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쉼 없이 떨어지는 폭포, 웃음 끊이지 않는다

[물이 빚은 도시 서귀포] 돈내코 계곡과 원앙폭포

물이 흐르는 계곡인데, 주변은 온통 숲이다. 튜브를 들고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나, 돌탑을 쌓는 젊은 커플이나 이 계곡에선 웃음을 멈출 수 없다. 바깥은 무더위로 숨을 쉴 수 없다는데, 여기선 추위까지 느낄 지경이다. 신은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해 이 계곡을 창조했을 것이다.

8월 들어 더위에 가뭄까지 이어져 걱정이 많아졌다. 행자부에서 매일 온열환자가 발생한다며 예방을 당부하는 문자를 보내고, 농민들은 가뭄에 작물이 말라죽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 연말까지 최고조에 달하던 엘리뇨가 이번 여름을 기점으로 약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는데, 뜨거워진 지구는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 원앙폭포(사진=장태욱)

이런 날이면 물가가 그리워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예전 같으면 바다를 찾겠는데 바닷물도 따듯하게 데워진 터라, 계곡물이 훨씬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서귀포시에 이런 무더운 날이면 사람이 몰리는 계곡이 있으니, 돈내코 계곡이다.

평일인데도, 돈내코 계곡 원앙폭포 주변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모였다.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 이들도 있다. 또, 주변에 있는 돌로 탑을 쌓는 연인들도 있다. 물소리가 진동하고, 숲이 맑은 공기를 내뿜는 이 계곡에선 더위나 짜증 같은 세속의 괴로움이 머물 틈이 없다.

한라산 남벽 주변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영천은 칡오름 북쪽에서 효돈천에 합류한다. 영천이 효돈천에 합류하기 전 약 3킬로미터 구간에서 지하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데, 이 계곡을 돈내코라고 부른다. 과거 토평 일대를 ‘돈드르(猪坪)’라 불렀던 데서 멧돼지와 연관된 지명이라고도 하고, 영천이 칡오름 앞에서 돌아서 흐른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 더운 날이면 돈내코 계곡에 사람들이 몰린다.(사진=장태욱)

서귀포 지역 구석구석을 조사하는 오창순 씨는 “돈내코를 흐르는 물은 산록도로가 영천 위를 지나는 제7산록교 아래에서 최초로 솟아나는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여러 군데서 물이 나와 센 물줄기를 이룬다.”라고 말했다.

최초 물이 솟아나는 곳에서 700미터 쯤 하류로 내려오면 원앙폭포가 있는데, 물의 양에서나 경관의 아름다움에서 이 폭포는 돈내코 계곡의 백미에 이른다. 5미터 높이 절벽에서 물이 쉼 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낙수에 의한 침식으로 폭포 아래는 반지름 10미터에 이르는 웅덩이가 형성됐다. 과거에는 백중날 도내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 물을 맞기 위해 돈내코 계곡을 찾았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피서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리는데, 웅덩이에서 물놀이하는 것은 허락해도 안전을 위해 낙수를 직접 맞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돈내코 계곡은 해발고도가 350미터에 이른다. 제주도 다른 지역의 용천수는 대체로 해안에서 솟아나는데, 여기 용천수는 솟아나는 지점이 다른 곳과는 차이가 크다. 이는 서귀포층의 분포와 관련이 있다.


▲ 물이 얕은 곳에도 사람이 몰린다.(사진=장태욱)

최윤호 제주지하수연구센터 최윤호 전문위원은 2023년 추계지질과학 연합학술대회에서 연구논문 「제주 중서귀 유역의 서귀포층 분포상태와 대수층과의 관련성」을 발표했다. 논문은 중서귀 유역은 서귀포층이 해안에서부터 해수면 상부에 분포하고 상위지하수 부존지역에 해당한다며, 서귀포층과 지하수의 관계를 파악하기에 적합하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이 일대 대수층(물을 충분히 함유해 개발 가능한 암석층) 분포 구간은 주로 용암류-서귀포층의 경계부와 서귀포층 내부에 분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수층이 발달한 구간의 공간적 암상 분포는 서귀포층이 약 83.4%에 이른다며, 서귀포층이 대수층을 구성하는 주암상이라고 주장했다.(서귀층과 지하수위 관계에 대해서는 앞선 기사 「정원도시 서귀포에는 솜반천이 ‘반지의 보석’」에서 설명했다.)

요약하면, 서귀포층은 지하수를 단단하게 받쳐주기 때문에 지하수를 담아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서귀포층은 해안에서는 일반적으로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분포하지만 한라산 가까이 가면 해수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지하수가 풍족하게 분포하는 구간을 조사해보며 어김없이 서귀포층이 발달한 곳이다.


▲ 돌탑을 쌓는 사람(사진=장태욱)

영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경사가 심한 편이다. 서귀포층 위에 함유된 지하수는 경사가 급하게 변하는 지점에서 밖으로 노출되어 지표로 솟아난다. 이런 현상을 ‘지하수의 함몰형 용천’이라고 한다.

돈내코 계곡 주변은 우리나라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인 구실잣밤나무를 비롯한 참가시나무, 동백나무, 종가시나무, 단풍나무인 교목, 자금우, 바위족제비고사리, 송악, 마삭줄 등이 분포한다. 희귀식물인 한란과 겨울딸기가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제주 상효동 한란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43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빼어난 경관과 풍부한 식생에 맑고 깨끗한 물까지 간직한 계곡이다. 서귀포에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물을 남겼으니, 신은 서귀포를 사랑해도 너무 사랑했나 보다.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과 웃음소리가 그걸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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