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도 향기도 없지만, 수고 뒤에는 달콤한 열매를 약속하는 꽃
[주말엔 꽃] 키위 꽃
키위 줄기가 천정을 덮은 농장인데, 키위가 꽃을 피웠다. 농부는 꽃을 감상할 틈도 없이 인공수분에 분주하다. 꽃이 지는 게 잠깐이라, 꽃잎이 펼쳐진 시기를 놓치면 수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소재 오지홍 씨 농장에 키위 꽃이 피었다. 아직 꽃망울 단계인 것도 있고, 꽃잎을 완전히 펼쳐놓은 것도 있다. 꽃은 천정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어 암술과 수술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키위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분리된 암수딴그루 식물이다. 암꽃은 꽃 중심에 암술과 그 주변에 수술이 있고, 수꽃은 암술이 없이 수술만 있다. 이 농장에 있는 키위는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라서 모두 암나무다.
일반적으로 꽃은 가운데 암술 1개, 그 주변에 수술 여러 개인 경우가 많은데, 키위 꽃은 좀 다르다. 암술이 꽃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비슷한데, 암술이 30~40개나 있다. 또, 암술이 가운데를 향해 뻗은 게 아니라 방사형으로 흩어졌다. 키위가 수분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특별한 구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키위는 자연수분이 잘 되지 않는 식물이다. 암꽃과 수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고, 암꽃에 꿀이 없어서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수분을 도와줘야 한다.


수분 전에 꽃가루에 숯가루, 석송자를 섞어서 염색한다. 수분기를 이용해 염색한 꽃가루를 암술에 발라주면, 수분한 꽃인지 눈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수분한 꽃은 하루가 지나면 꽃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떨어지기 때문에, 주인은 종일 새로 피어난 하얀 꽃을 찾아서 꽃가루를 발라줘야 한다.
키위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20세기 초에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키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키위는 원래 뉴질랜드의 나라 새 이름인데, 열매가 이 새와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에서는 키위를 '미호타오'라고, 한국에서는 '다래' 또는 '양다래'라고도 부른다.
오지홍 농가는 뉴질랜드 제스프리(Zespri) 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골드키위를 생산한다.

제스프리는 1997년 설립된 뉴질랜드의 기업형 협동조합이다. 설립초기에 한국 시장에 진출했고 2003년, 당시 남제주군(지금의 서귀포시 읍면지역)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과실생산 협약을 체결했다. 제주도는 북반구에 있어서, 남반구 뉴질랜드에 키위가 생산되지 않는 시절에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제주도의 온화한 기후, 비닐하우스 시설이 양질의 열매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계약 초창기 남제주군 100여 농가가 제스프리와 계약을 맺고 키위를 생산했는데 지금은 재배농가가 제주도,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로 점점 확대됐다. 국내 시장에서 제즈프리 골드키위에 대한 수요가 늘어갈 뿐만 아니라, 제스프리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판매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에서 210여 농가가 160ha 규모로 계약재배에 참여한다. 뉴질랜드 2700여 농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는 4300여 농가가 제스프리 키위를 생산한다.
오지홍 씨는 제스프리가 제주도에 진출한 초창기부터 키위를 재배했다. 지금 키위 농사를 지은 지 23년째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고 포기를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키위 농사 가운데 매해 인공수분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몇 해 전에 돌았던 궤양병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궤양병 때문에 줄기가 마르고 생산을 못하자 키위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도 있었다.
오지홍 씨는 기존 품종(H16) 나무를 뽑아내고 제스프리 본사가 권장하는 신품종(G3) 묘목을 심었다. 그 어린 묘목이 자라서 4년이 되니 이처럼 농장을 뒤덮었다.

신품종 키위는 궤양병에 강한 점 말고도 꽃이 늦게 피고 열매가 일찍 익는 장점이 있었다. 기존 품종은 꽃눈이 오르는 시기에 꽃샘추위가 닥쳐 꽃을 피우지 못하는 위험이 있었다. 지금 품종을 심은 뒤에는 꽃눈이 늦은 시기에 나오기 때문에 꽃샘추위 걱정이 사라졌다.
단점도 있다. 기존 품종은 5일 이상 피었는데, 신품종은 꽃잎이 열리고 머무는 시간이 3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인공수분 작업이 분주해졌다. 도중에 비라도 내리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올해는 키위 꽃 피는 시기가 나무별로 편차가 크다. 첫 꽃이 피는 날부터 마지막 꽃이 지는 날까지 일주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농부가 인공수분에 매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