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공동묘지 밤의 적막을 깨는 울림, 주민의 염원 담았다
중문마을회 6일, 토신제 봉양
자정이 가까운 시각, 마을 공동묘지에서 축문이 한밤의 적막을 깼다.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제관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연속해서 절을 올리고 술을 따랐다. 중문마을이 토신제를 올리는 날인데, 주민들은 이 제사를 위해 며칠 전부터 정성을 모았다고 한다.
7일 중문마을회(회장 김지환)가 마을 공동묘지에 마련된 토신제단에서 토신제를 봉양했다. 해마다 마을회가 주관하는 제사인데, 중문마을새마을부녀회와 새마을지도자, 청년회, 노인회 등 마을 자생단체가 제사를 위해 정성을 모았다.

예전에는 각 가정별로 토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부터 마을 토신제로 지내게 됐다. 마을 대표가 토신제를 지냄으로써 각 가정에서 상이 났을 때 따로 제를 지내지 않아도 되게 한 것이다.
제사를 위해 주민들이 별도로 돈을 거두지는 않았다. 김지환 마을회장은 “마을회에 정해진 예산이 있어서 그 범위에서 쓰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단체에서 수고를 많이 하는데, 특히 새마을부녀회가 일마다 많이 도와주신다. 마을회장으로서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오 무렵 고대지 마을 감사를 포함해 몇 명이 토신제단이 있는 공동묘지를 정비하고 왔다. 제관을 포함한 일행이 제단에 갈 수 있도록 길을 트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제단 주변을 청소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중문마을새마을부녀회 회원은 약 50명인데, 토신제를 위해 20여 명이 참석해 음식 재료와 제수, 제기를 준비하는 일을 했다.
토신제을 올리기 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중문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8천여 여명에 이르러 모든 주민을 초청할 수는 없어서, 마을 운영위원과 중문동주민자치위원을 초청해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마침 중문동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성민)는 이날 월례회의가 잡혀 있었다. 위원 25명과 김재희 중문동장, 담당 공무원 등 28명은 회의가 끝난 후 마을회관을 방문해 저녁식사에 참석했다.


새마을부녀회는 이날 약 100명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밥과 몸국, 돼지고기 수육, 버섯볶음, 샐러드, 삶은 배추 등으로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참석한 주민과 위원들은 음식과 술을 나누면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김지환 마을회장은 임창금 새마을부녀회장에게 찬조금을 전달했다. 새마을부녀회가 여행을 준비하는데, 경비에 보태라는 취지였다. 그동안 마을회 일을 말없이 도와준 부녀회원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김성민 주민자치위원회장도 김지환 마을회장에게 찬조금을 전달했다. 마을에서 식사를 정성스럽게 대접해준 것에 대한 보답일 텐데, 그렇게 수고와 정성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저녁식사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토신제를 자정 무렵에 올리는 게 그간의 관례였다. 그런데 저녁에 눈발이 날리면서, 제를 조금 일찍 올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김성민 마을회장은 저녁 8시30분에 묘지로 출발해서 조금 일찍 올리자고 했다. 그런데 마을 원로가 저녁 8시30분은 너무 이르다고 해서, 저녁 10시로 조금 늦춰졌다. 그리고 사정이 발생해 저녁 10시30분에야 제관을 포함한 일행이 제단으로 출발했다.

중문마을 토신제는 마을회장 혼자서 제관을 맡아 올린다. 마을 단체장들과 청년들이 제물을 옮기고 진설(제사상 차림)과 철상(제사상을 정리)을 돕는다. 고대지 부회장과 김성관 감사, 김경찬 새마을지도자, 이태훈 청년회장, 홍석빈, 이수빈 청년회원 등이 이 일을 도왔다.
공동묘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도로가 미끄러워 묘지 안으로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묘지 입구 콘크리트 도로에 차를 세우고 제단으로 짐을 옮겼다. 제단이 얼어 수건으로 닦아 낸 후에야 제물과 지방, 향로, 축문을 올렸다.
토신제의 제물은 다 마을의 포제와 비슷하게 날 것으로 사용한다. 메는 4가지를 준비하는데, 쌀밥과 좁쌀밥을 2개씩 올린다. 다른 제물과 달리 메는 쌀과 좁쌀을 각각 쪄서 올린다. 명주와 백지로 폐백을 준비하고, 시루떡 2개, 명태, 포육(쇠고기), 생선(쏠라니), 밤, 대추, 은행, 미나리채, 무채, 술 등을 제물로 올린다. 누군가 예정에 없던 곶감도 가져와서 밤과 같은 접시에 올렸다. 생선과 포육은 포제와 같이 생물을 제물로 올리고 대나무 젓가락은 네 개씩 네 묶음을 놓았다. 술잔도 4개 준비하고 술은 경주법주를 올렸다.
제를 올릴 준비가 끝나자 제관 한 명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다. 각자 타고 온 차에 않아 제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김성관 감사는 “제사를 지낼 때 부정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데, 일일이 가릴 수 없어 제관만 남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관 혼자 남아서 먼저 사배를 올리고 촛불로 향을 사른다. 그리고 네 개의 술잔에 술을 따라 올리고 축문을 읽고 사배를 한다. 그리고 술잔을 모두 비워낸 후 거기에 다시 술을 따른다. 축문을 읽고 사배를 한다. 이렇게 (술잔비우기)-술 따르기- 축문 읽기 -사배 순서가 4차례 반복된다.
다음은 축문의 전문다.
維 歲次 乙未 正月 乙未 朔 九日 마을회장 志奐 敢昭告于
土地之神 令爲 西歸浦市 中文洞 OOO番地 마을共同墓地 管理代表
마을會長 金志奐 外 住民一同 伏惟
赫赫明神 管我塋域 爲民司命 莫非神陰 家家世葬 代代承承
無數封塋 永世安樂 眞加保佑 去難除厄 黙羞陰德 永遠無頉
咸得致祥 慶事常至 神其佑之 謹以酒果 脯醯庶品 祗薦于神 尙饗
유세차 을사 정월 초 아흘레 중문마을회장 지환 감소 고우
토지지신 영위 서귀포시 중문동 OOO번지 마을공동묘지 관리대표
김지환 외 주민일동 복유
혁혁명신 관아영역 위민사명 막비신음 가가세장 대대승승
무수봉영 영세안락 진가보우 거난제액 묵수음덕 영원무탈
함득치상 경사상지 신기우지 근이주과 포혜서품 지천우신 상향

제관이 제를 마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일행은 차에서 나와 제단으로 와서 철상을 도왔는데, 제를 올리고 남은 음식은 조각을 내서 제단 주변에 뿌렸다. 그런 과정을 마무리하고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워졌다.
부녀회원들은 그 때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를 올리고 남은 솔라니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했다. 이걸로 음복하고 포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청년회원 홍석빈 씨는 제단에 올렸던 쇠고기를 구우면서 “요리사 경력을 살려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수빈 씨는 “올해 처음으로 포제단에 가봤는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중문관광단지가 개발되면서 국내 최대의 관광지가 된 중문, 외부에는 상업시설이 번성한 지역으로 알려졌는데, 안에는 이렇게 공동체가 단단하게 결속을 유지하고 있다.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면서 위로 자라듯이 마을회도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르면서 결속하며 성장해온 것이다.
** 제주학연구센터의 마을제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