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제 참석한 어린이 “남영호 사고는 너무 슬픈 일”

남영호 참사 54주기 위령제 15일 열려

서귀포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남영호 참사. 당시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이 모여 위령제를 열었다. 마침 휴일이라 청소년들도 참석했는데,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생한 참사인데도 어린이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남영호 조난자 위령제가 15일 오전 서귀포시 정방폭포 인근 위령탑에서 열렸다. 서귀포시가 위령제를 주관했다. 남영호 희생자 유가족 5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오순문 서귀포시장과 위성곤 국회의원, 강상수·하성룡 도의원 등을 포함해 공직자와 시민이 참석해 유족을 위로했다.


▲ 제단에 꽃을 바치는 유족들(사진=장태욱)

이날 위령제에는 간단하게 헌화와 분향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위령탑 앞에 마련된 제단에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며 슬픔을 되새겼다.

나종열 남영호 희생자 유족회장은 유족대표 인사에서 “대학교 3학년 때 남영호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는 군사독재 시절이라 조그만 일에도 정보국에서 잡아가던 시절이었다.”라며 “나도 말을 못했다”라고 말했다.

나 회장은 “남영호 사고 말고, 하루에 400명이 희생된 사건이 있었나? 300명 넘는 시신이 배 안에 있을 것이다.”라며 “이 사건은 서귀포시가 아닌 전국적인 사고였다. 자손만대 잊지 말아 한다.”라고 말했다.


▲ 채준민 군이 꽃을 올리는 장면(사진=장태욱)

올해 위령제에는 예년과 달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모습을 보였다. 남영호 희생자 유족인데, 위령제가 열리는 날이 마침 휴일이라 유가족이 후손에게 남영호 참사의 실상을 알려주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채준민(동광초 5학년)은 희생자 故 채재춘 님의 증손자이자 유족회 총무인 최원순 씨의 손자다. 채준민 군은 “엄마 아빠가 위령제에 가자고 해서 왔다.”라며 “위령제에 참석하는 건 올해가 두 번째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위령제에 와서 남영호 사고에 대해 듣고 분향을 하다 보니 슬픈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 시민과 공직자들이 분향하는 장면(사진=장태욱)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27분, 남해 여수 인근 소리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남영호(南榮號)가 침몰했다. 날씨는 맑고 파도도 세지 않은 날이었는데, 과적이 원인이었다. 배가 기우는 동안, 선장은 무선으로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해양경찰은 12시간 가까이 현장에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당일 오전 8시25분경 인근을 지나던 일본 어선이 최초로 구조에 나섰고, 일본 어업 순시선이 출동해 소수 생존자를 구출했다.

결과적으로 ‘최소’ 319명, ‘최대’ 337명이 목숨을 잃었고 남자 6명, 여자 6명 등 총 12명만 살아남았다.

당시 채재춘 씨는 부산에 살고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영호에 탑승했다. 집안 경사였기에 동생과 막내아들, 조카 등을 포함해 7명이 함께 탑승했다. 집안잔치에 가는 길은 결과적으로 황천길이 됐고, 사고는 집안에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54년 전 사회와 집안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참사가 민준 군의 여린 가슴에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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