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없어 종묘제사가 연기됐다니, 특별해도 너무 특별한 과일

탐라문화연구원 ‘쿰다 아카데미’ 네 번째 강좌 5일, 오석학교에서 열려

서귀포 오석학교 만학도 어르신들이 옛 그림을 통해 오래 전 이 섬을 수놓았던 귤빛을 감상했다. 그 맛이 달콤하고 냄새가 향기로운 만큼 조정의 사랑을 온몸에 받았던 열매인데, 그 사랑의 깊이만큼 백성에게는 큰 고통을 안겼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담긴 주홍빛 귤은 너무도 영롱했고, 그림을 보는 어르신들 눈빛 또한 그만큼 빛이 났다.

‘2023 쿰다 아카데미’ 네 번째 강좌가 2월 5일 저녁 서귀포 오석학교에서 열렸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인문사회연구소 연구원이 ‘삶을 잇다 -감귤, 맑고 시원함’이라는 주제로 강의에 나섰다.


▲ 고수미 연구원이 4번째 강사로 나섰다.(사진=장태욱)

고수미 연구원은 지난해 서귀포지역 해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팔순 해녀들이 겨울 내내 귤을 따러 다니는 것을 봤다. 그때 서귀포의 어르신 인생에서 귤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고, 어르신들과 귤을 소재로 얘기를 나눌 계획을 세웠다.

고 연구원은 강의 서두에 “어르신들 삶에서 귤은 어떤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르신들은 “그것 때문에 서귀포가 잘 살게 됐다”라거나, “그걸로 아이들 키우고 공부도 가르쳤다”라고 답했다.

이에 고 연구원은 “지금도 귤이 특별한데, 이미 고려시대에도 귤은 특별했다”라고 말하며, 약 900년 전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지은 시의 한 대목을 소개하기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귤에 관한 기록도 소개했다. 조선시대 귤을 제주도에서만 생산됐고, 임금에게 진상되어 국가제사에 사용됐다는 내용 등이다. 1704년 제주도에서 동정귤과 유감이 제때 올라오지 않아 종묘제사가 연기됐다는 대목에서, 어르신들은 조선시대 귤의 위상이 그 정도였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귤이 제주백성에게 그리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조정에서 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걸 진상하는 백성의 고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도내 40개 넘는 과원에서 9월부터 10일 간격으로 조정에 귤을 보내는데도, 귤은 늘 부족했다. 지방관들은 민가의 귤을 조사해서 어린 열매의 수를 헤아려 장부에 기록하고 수확 시기가 되면 장부의 기록된 대로 납품하라고 추궁했다니, 백성에게 귤은 고통의 근원일 수밖에.



조선시대 귤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탐라순력도에 포함된 ‘감귤봉진(柑橘封進)’, 귤림풍악(橘林風樂), 고원방고(羔園訪古) 등 그림 세 편을 들여다봤다. 특히, 감귤봉진은 과거 귤 진상을 위해 선별하고 포장하는 장면이 담겨서 흥미를 끌었다.

제주목 망경루 뜰에서 여인들이 귤은 선별하고 그 주변에서 남정들이 귤을 담을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귤이 상처 나거나 썩지 않도록 짚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은 지금은 종이상자에 담고 습기를 없애려고 신문지를 상자 안에 넣는데, 옛사람들이 짚을 넣었다며,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은 이해도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탐라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총 5회 강좌로 ‘2023 쿰다 아카데미’를 기획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3차례 강좌를 연 후 폭설이 내려 중단됐고, 못 다한 두 차례 강좌를 2월 5일에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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