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에 오석학교에 나오며 “많이 울었다”

장용순 어르신, 고졸 검정고시 대비하기 위해 입학

서귀포 오석학교가 9월 9일 입학식을 개최했습니다. 검정고시가 4월과 8월에 두 차례 시행되는데, 검정고시 결과에 따라 반을 재구성하고 내년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입학식이라야 교사와 학생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수업 시간표를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 학생들은 익숙한 일인데, 학교가 처음이거나 공부를 중단한 지 오래된 학생들은 이 과정도 어색합니다.


▲ 85세에 오석학교에 입학한 장용순 어르신(사진=장태욱 기자)

9일 입학식을 맞아 오석학교에 첫 발을 내딛은 만학도 어르신들이 여럿 보입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러 온 분도 있고, 젊어서 공단에서 일하면서 야간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동안 공부를 못 다한 아쉬움이 가슴에 맺혀 있었던 분들인데, 늦은 나이에 야간학교 문을 두드리는 데에도 적잖이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날 팔순이 넘은 어르신이 입학을 신청했습니다. 외모로는 그 정도 연세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1939년생이라는 말씀에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연세에 비해 외모나 말씀이 너무 정정해서도 놀랐고, 늦은 연세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용기에도 놀랐습니다. 장용순 어르신입니다.

장용순 어르신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1나 7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집안은 당시 마을에서도 가장 부유한 집이어서, 오빠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돈을 내서 초등학교를 건립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학교가 1948년에 문을 연 용산초등학교입니다. 교정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비석이 있었는데, 2007년에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남녀 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골 어른들은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하기도 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장용순 어르신의 언니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막내딸만큼은 학교 공부를 제대로 시키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지지에 힘입어 장용순 어르신은 청도군 화양읍에서 남성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모계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에서 모계중학교까지는 산길을 넘어 8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는 중학생도 자취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장용순 어르신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동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딸을 공부시키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는 사람의 눈총을 피해 다니기도 했답니다.

어머니는 막내딸을 고등학교까지는 보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워낙 말이 많았습니다. 결국 장용순 어르신 스스로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 일이 평생 가슴에 아쉬움으로 남게 됐습니다.

결혼하고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나는 바람에 홀로 네 자녀를 키워야 했습니다. 자녀를 먹이고 학교 보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생한 보람으로 네 자녀를 모두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삶이 아무리 분주하고 어려워도 학업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지금도 중학교 동창회에 꼬박꼬박 참석합니다.

“모계중학교 졸업생들은 올해까지 동창회를 열었습니다. 우리 중학교 동창생들 가운데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한 사람이 10명이 넘습니다. 동창생들이 해마다 동창회를 여는데, 40명이 넘게 나옵니다. 동기들이 동창회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지팡이를 짚고도 나옵니다. 그 모임이 소중한 것 같아서 나도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올해도 다녀왔어요.”

중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면 예전 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가 오갑니다. 그런 날이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 구석에서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그런데 제주도 서귀포시에 와서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딸이 제주도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서귀포에 살고 있습니다. 장용순 어르신은 10년 전부터 딸과 가까이 살면서 바쁜 딸을 대신해 집안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서귀포에 오석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입학원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내가 오석학교에 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면 죽어서 저승에 가도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눈물을 흘린 장용순 어르신은 날마다 오석학교에 나와서 늦은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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