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겉면 안에 선홍색 고기, 하얀 치즈 듬뿍.. 향기에 취한다

[동네맛집 ②]남원읍 ‘하나비’

▲ 치즈돈까스(사진=장태욱)


남원읍에 돈까스 전문 음식점이 생겼다는 예기를 몇 달 전에 들었다. 돈까스를 보면 떠오르는 추억도 있고, 아직까지 ‘초딩 입맛’이 남아 있어서 여전히 좋아한다. 귤 수확을 마쳤는데, 날씨마저 추워서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날이다. 점심에 고소한 돈까스 향기나 맡으면, 하루는 그 느낌으로 행복하지 않겠나?

위치를 확인하고 가게 앞으로 찾아가니 입구 간판에 ‘일본식 돈까츠 전문점 하나비(HANABI)'라고 적혔다. 프랜차이즈 가게인가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아닌 걸로 확인됐다.

가게 안에 4인용 테이블이 2세트, 8일용 단체실이 있고 나머지는 한 사람씩 나란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길쭉한 테이블이 창가에 붙어 있다. 오전 11시30분쯤인데,  4인용 테이블은 이미 자리가 찼고 두 사람이 단체실을 차지하기엔 미안해서 그냥 한 사람씩 앉는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포함해서 손님이 10명 남짓한데 훤칠한 청년이 혼자 요리도 하고 음식도 내오고 분주하다.

안내판에 음식은 등심돈까스, 치즈돈까스, 멘치카츠, 우동, 고기우동, 스키야키 등 6가지가 적혔다. 등심돈까스가 9000원, 치즈돈까스가 1만원, 멘치카츠가 8000원이란다. 전문점이라서 돈까스 한 접시에 1만2000원 정도는 예상하고 왔는데, 예상보다 저렴하다. 우동이 7000원, 고기우동이 9000원, 스키야키가 1만3000원이라 가격 부담은 별로 없는 집이다. 둘이 갔기에 등심돈까스와 치즈돈까스를 한 접시씩 주문했다.




깍두기와 단무지, 양념장이 먼저 상에 오른다. 그리고 잘게 썬 청양고추가 나오는데, 주인장은 “청양고추를 양념장에 넣어 먹어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등심돈까스와 치즈돈까스가 바로 나온다. 양식집에서 돈까스 전에 나오는 스프 같은 애피타이저를 이 음식점은 생략했다.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는 대신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 등심돈까스


돈까스는 주인장이 직접 칼로 썰어서 내왔다. 등심돈까스는 겉이 잘 튀겨졌는데, 고기의 하얀 속살이 돋보인다. 갈색 겉면과 대비를 이루는 속살이 습기를 머금은 채 빛을 발한다.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바삭한 느낌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입 안에 몰려온다. 씹을 때 느껴지는 촉감마저 부드러워 좋다.

치즈돈까스는 빵가루와 고기 표면은 매우 얇은데, 그 안에 치즈로 가득 채웠다. 안쪽에 하얀 치즈, 그 밖에 연분홍 고기, 갈색 겉면이 대비를 이룬다. 씹을 때는 바삭한 겉면과 촉촉한 고기가 느껴지는가 싶은데, 치즈의 쫄깃한 맛이 입에 오래 남는다.

밥과 된장국이 나오는데, 된장국은 일본식이다.

음식 값을 지불하려는데, 화환 두 개 눈에 들어온다. 한화 이글스 투수 김범수 선수와 삼성라이온스 외야수 김재식 선수가 보낸 것들이다. 알고 보니 주인장 김지혁 씨가 삼성 김재혁 선수의 형이고, 본인도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고 했다.

돈을 지불하다 말고 김지혁 사장의 이야기에 빠졌다. 궁금해서 몇 가지 물어봤는데, 청년의 인생 치고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고등학교까지 야구선수로 생활했고, 고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지인 소개로 한화이글스에서 불펜포수로 활동했다. 그렇게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화 경기를 쫓아다니며 불펜에서 투수들이 몸을 풀 때 공을 받았다. 정우람, 장시환, 장민재, 김범수 등 한화의 베테랑 투수들이 그와 함께 등판을 준비했다. 김범수 선수는 그 인연으로 김지혁 씨가 창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환을 보냈다는 것.


▲ 김지혁 대표(사진=장태욱)

▲ 오전인데 홀 안에 손님들이 있었다.(사진=장태욱)

“한화에서 알았던 형이 성남시 분당구에 일본식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 됐어요. 2022년에 거기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웠어요. 원래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이었는데, 돈까스 만드는 게 재미있었어요. 여기 있는 음식에서 단무지 빼곤 전부 직접 만들어요.”

그렇게 1년 요리를 배우고 올해 봄에 고향으로 돌아와 돈까스 전문점을 열었다.

“야구와 요리 가운데 아직도 야구가 익숙합니다. 인생의 절반을 야구하면서 살았고, 요리는 불과 2년이잖아요.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손님이 있고 매출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이걸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는데 계산대 앞에 귤 한 바구니가 있는데, 마음껏 가져가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이런 경우 팔 수 없는 비상품 귤을 놓는 게 일반적인데, 붉게 잘 익은 싱싱한 상품이다. 김지혁 씨의 아버지가 타이벡 재배로 생산한 것인데, 아들을 돕기 위해 가져다 놓았다. 한 조각 먹어보니 같은 농부의 입맛도 저격할 정도다. 아들이 야구하는 동안 뒷바라지했고, 창업에 나서자 잘 되길 후원하는 마음으로 가져다 놓았다.

가게는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마지막 손님을 받는다. 일요일엔 문을 닫고, 여자 친구 만난다고 했다. 위치는 남원읍 태위로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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