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매화에 취한 꿀벌, 너무도 황홀한 봄 풍경

[주말엔 꽃] 순백의 매화와 다산의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마당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몇 해 전 식목일에 읍사무소에서 나눠 매실나무가 마당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 키 보다 더 높이 자랐다. 이제 가지 꼭대기에 있는 꽃을 바라보자니 짙푸른 하늘이 배경으로 깔린다.

매화는 지난겨울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봄의 문턱에 잎보다 먼저 핀다. 눈 내리는 날씨에도 꽃이 피는 고고함 때문에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도 매화를 통해 희망을 갖는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묵객이 매화를 칭송하는 것도 그 고고함과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다.


▲ 마당에 피어난 매화(사진=장태욱)

매화 하면, 잊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몇 해 전 강진 다산박물관에서 봤던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이다. 다산이 그림을 남긴 사연을 알고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1801년부터 18년간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신의 부인(홍혜완·1761~1838)은 1806년, 유배중인 남편에서 애절한 시와 함께 시집 올 때 입은 붉은 치마를 동봉해서 보냈다. 붉은색이던 치마는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담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푸른 하늘 아래 순백의 꽃이 피었다.(사진=장태욱)

▲ 꿀벌이 부지런히 꽃을 헤집고 있다.(사진=장태욱)

다산은 부인이 보낸 치마를 5폭으로 접어서 첩을 만들고 두 아들에게 훈계하는 글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812년, 외동딸이 시집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간직했던 부인의 치마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하얀 매화 가지에 새 두 마리가 다정하게 한 방향을 바라보는 그림, 매조도(梅鳥圖)다. 그리고 매화와 새를 칭송하는 시와 함께 글을 쓰게 된 연유를 글로 남겼다. 이 글과 그림을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라고 한다.


▲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다산박물관에서 촬영)

박물관에서 매화병제도를 보고 사진을 찍어서 딸에게 보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으니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딸바보 아빠는 영화든 그림이든 딸과 관련한 것을 보면 울컥하게 마련이다.

모든 식물이 그러하듯 매화가 피는 것도 열매를 맺고, 궁극에는 씨앗을 퍼트리기 위함이다. 씨앗이 만들어지려면 수술 끝에 있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는 수분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직 싸늘한데, 어디서 왔는데 꿀벌이 열심히 꽃을 헤집고 있다. 벌이 꿀을 찾으려 몸부림치는 와중에 꽃가루는 어느새 암술머리에 달라붙을 것이다.

작년에는 우리 고장에 매실이 제대도 열매 맺지 못했다. 벌의 개체수가 감소해 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벌이 부지런히 활동하는 걸 보니 올해는 알찬 매실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매화의 꽃잎은 다섯 장인데, 꽃받침이 없다. 꽃 한 송이에 수많은 수술이 마치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배열됐다. 암술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짧은데, 자세히 보니 연두색 암술이 꽃 가운데 깊은 곳에 숨어 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순백의 매화가 짙은 향을 발한다. 그걸 탐해 벌이 노닐고 있으니 이건 너무도 황홀한 봄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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