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최전선, 그 경계에 피어난 꽃
[주말엔 꽃] 두머니물 유채꽃
바다가 마당처럼 눈앞에 펼쳐진 서귀포시 두머니물에 유채꽃이 노랗게 피었다. 범섬 앞 갯바위에는 물새가 놀고, 해변 도로에는 사람들이 넋을 놓는다. 유채꽃은 신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해안에 놓인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서귀포시 법환동과 강정동 해안 경계를 ‘두머니물’이라고 한다. 과거 서귀면과 중문면의 경계, 그러니까 두 면(面)이 만나는 바다라는 의미로 ‘두면의 물’이었는데, 소리가 바뀌어 두머니물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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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서면 바다는 정원이고 그 위에 범섬이 거대한 석상처럼 버티고 있다. 그리고 문섬과 섶섬이 해안도로 너머 동쪽 바다를 막고 있다. 꿈에서나 봤음직한 풍광을 담기 위해 여행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 황홀한 풍광 위에 유채꽃 노란 색채가 더해졌다.
유채는 스칸디나비아반도가 원산지로 알려졌다. 작물로는 기원전 5세기에 중국에서 처음 재배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재배된 기록이 있는데, 당시에는 음식재료가 아니라 약재였다. 1610년 허준이 발간간 『동의보감』에 유채 대신에 '운대'라 적고, 한자의 음훈 그대로 평지나물이라 불렀다. 『동의보감』에는 ‘운대는 좀을 물리치니 책속에 놓아두면 좀을 먹지 않는다’라거나 ‘부인이 출산을 하면 사물탕에 운대자를 넣고 달여 빈속에 먹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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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채는 쓰임이 다양하고 장점이 많은 채소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데다, 월동재배가 가능해 토지이용도를 높일 수 있다. 10월 하순 경에 파종을 하면 이른 늦은 겨울에 싹을 내고 봄이면 꽃을 피운다.
이른 봄에 유채에 싹이 트면 농민들은 이를 뜯어서 ‘유채나물’로 시장에 판다. 그리고 봄에 꽃이 피면 경관을 화려하게 해 관광객과 꿀벌을 부른다. 유채가 경관농업 소재로 주목을 받는 이유다.
제주도에서 유채를 재배한 건 1956년 일본에서 품종을 도입해 증식한 것이 효시다. 석주명 선생의 제자인 김도연(1920~1998) 선생이 시험재배로 처음 도입한 게 확인됐다. 김도연 선생은 석주명 선생이 서귀포 토평동 소재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에서 주요 작물과 약초를 재배하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석주명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훗날 감귤 묘목과 유채, 겨자 등을 시험 재배해 제주도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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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주4·3의 추모곡으로 유명한 ‘잠들지 않는 남도’에 ‘피에 물든 유채꽃’이 등장하는 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11월 군경의 대학살로 들녘이 피에 물들던 시절에는 제주도에 유채가 재배되지 않았다.
옛날 농부들은 유채를 바다 가까운 곳에 심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가 여행지가 되고 여행객들이 이 꽃을 좋아하면서 두머니물도 유채꽃 명소가 되고 있다. 서귀포시는 해마다 봄이면 유채꽃 걷기대회를 개최하는데,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유채씨를 파종했다. 3월에 유채꽃이 반발하면, 두머니물은 아름다운 풍광 위에 바다향과 유채꽃 향기로 뒤덮인다.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함민복의 시 ‘꽃’의 한 대목이다. 집 담장 울타리 담벽 위에 놓인 화분에 꽃이 핀 것을 보면서 남긴 시다. 경계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 혹은 빛과 어둠, 폭력과 평화를 가르는 선이다. 그 긴장 위에 피어난 꽃이라니 여러 가능성을 내포한다. 경계 위에 피어서 긴장을 완충할 수도 있고, 긴장의 본질을 가릴 수도 있다.
두머리물, 과거엔 서귀면과 중문면의 경계였는데 오늘날은 군사기지와 해녀활동의 경계가 되었다. 지난 20년 가까운 시절, 법환의 해녀들은 해녀학교를 유치하고 이 바다를 해녀문화의 밭으로 일궜는데, 강정의 해녀들은 보상을 기대해 해군기지를 유치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경계의 바다 앞에 노란 유채꽃은 속절도 없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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