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원이고 목욕탕이었는데, 이젠 더위에 지친 나그네의 쉼터
[물이 빚은 도시 서귀포] 자리구물
절기가 오락가락 한다. 무더위 끝에 잠시 가을장마가 섬에 머물더니, 또 무더위가 찾아왔다. 더운 날, 시원한 물가에서 더위를 날리는 건 모든 이들의 즐거움이다.


15일 오후, 서귀포시 송산동 자구리공원에 사람들이 붐빈다. 물가에서 물놀이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다. 이곳에 지역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식수로 사용해온 자구리물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자구리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주변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자구리물에서 몸을 헹구기도 한다. 올레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물가에서 몸을 식히러 왔다는 사람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구리물은 더운 날 사람들에게 시원한 자리를 내어주는 쉼터다.
서귀포시 송산동은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정방폭포와 소정방폭포, 소남머리, 자구리 등에서 사철 쉬지 않고 물이 쏟아진다. 이 지역 지반을 이루는 특별한 지층구조 때문이다.
제주도 지하에는 서귀포층이라 불리는 지층이 있는데, 이 섬의 지하수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서귀포 남쪽 해안에는 서귀포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서, 지하에 있는 물을 땅 밖으로 들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서귀포 남쪽 해안에 물이 풍부한 이유다.

자구리물에서는 하루에 3000톤 이상의 지하수가 솟아나는데, 도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자구리물을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어, 윗물은 길어다 식수로 썼고 아랫물에선 빨래하고 목욕했다. 해안가 여느 마을 용천수가 그렇듯이 물을 길러온 사람, 빨래하러 온 사람, 목욕하러 온 사람으로 늘 이곳엔 사람이 붐볐다.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주민들은 자구리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이면 시원한 물을 찾는 피서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자구리공원에 바닥분수까지 설치돼서 이젠 공원에서도 아이들이 더위를 시원한 물세례를 받을 수 있다.
더운 날 도심 가까운 해안에서 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물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신이 빚은 물의 도시, 서귀포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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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