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마리 넘는 우럭 소쿠리가 1만 원, 오일시장에선 좋은 일만 생긴다
[장보기] 성산읍 고성오일시장
참새의 방앗간처럼 기일에 되면 꼭 들러야 마음이 풀리는 곳이 있다. 제주도에선 오일시장이 대표적이다. 꼭 사겠다고 마음먹은 제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백화점이나 브랜드 제품 대리점처럼 구경만 하다 나오는 경우는 없다. 오일장에 가면 뭔가 한 가지는 사게 마련이다. 수박과 복숭아, 고등어, 갈치, 모자, 작업복 등 파는 물건이 모두 일상에 필요한 용품인데, 가격이 1~2만 원 수준이니 못 사거나 안 살 이유가 없다.
아직도 오일장에선 흥정이 부지런히 오가고, 파장이 가까워오면 떨이도 나온다. 운이 좋으면 비싼 상품을 반값에도 살 수 있다. 흥정과 떨이에 맛을 붙이면 비로소 오일시장 쇼핑에 중독되는 것이다.

9일 오전 11시 경, 성산읍 고성오일시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20여 상가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주말에 장이 열리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 비 때문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아내가 어물전을 먼저 들려보자고 했다. ‘명승수산’이라는 상호가 붙은 상점에서 생선을 살폈다. 주인장은 우럭 10여 마리가 들어있는 소쿠리를 보여주며 “다해서 1만 원”이라고 했다. 이건 오일시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격이다. 매운탕을 끓여보지 않았던 지라 아쉽지만 포기했다. 대신 살이 오른 제주산 고등어를 구매했다. 큼직한 놈 세 마리가 1만 원인데, 내장을 내고 도막을 쳐서 소금으로 간도 해줬다.
그다음, 작업할 때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사기로 했다. ‘혜원이네모자’라는 상점에서 천 마스크를 구매했는데, 1개에 5000원이다. 아내는 얼굴에 맞고 부드러운 것이라 마음에 든다며,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낫을 사기로 했다(제주도에선 낫을 호미라고 부른다). 오일시장에선 대장간에서 장인이 만든 낫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다. 철물점에서 파는 공장 낫에 비해 비싸기는 한데, 날이 훨씬 잘 든다.
‘동남고성철공소’라는 상호가 붙은 상점에 갔는데, 여성 주인장이 벌써 짐을 싸고 있었다. 주인장은 “고성오일시장은 오전에 장사를 하면 낮에 거의 손님이 끊긴다. 상인들은 대부분 낮에 철수한다.”라고 말했다. 고성오일시장에서는 오전 10시 이전에 가야 장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낫 하나를 샀는데, 가격이 1만2000원이다. 여름에 풀과 전쟁을 치르려면 좋은 낫 하나는 갖춰야 한다.

주인장은 낫을 내주면서 “우리 아방(남편을 의미)이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대장간에서 낫과 호미, 빗장, 식칼 등을 만들면, 주인장이 오일장을 돌면서 판다고 했다. 그 대장간의 역사가 100년은 되었다니, 다음엔 대장간에 직접 가보기로 하고 전화번호까지 받아뒀다.
적은 돈을 쓰고도 많은 것을 얻어 올 수 있는 게 오일시장이다. 그래서 가면 늘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는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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