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낭’ 한 그루가 전하는 이야기, 폭우 쏟아져도 귀는 열린다

'제주마을 큰낭투어' 순례자들 14일, 제 2코스 금물과원 방문

폭우가 쏟아져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 해설사의 설명은 끊이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데에서 프로그램에 참가한 시민들이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 금물과원 지킴이 곰솔(사진=장태욱)

14일,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이른 아침 서귀포시를 찾았다. (사)제주도박물관협의회(회장 정세호)가 주최하는 2025년 제주마을 큰낭투어’ 에 참가한 시민들이다. 이날 일정의 첫 번째 탐방지로 남원읍 하례리에 소재한 금물과원(禁物果園)을 찾았다. 그곳에는 복원된 여러 종의 재래 귤나무도 있고, 과원을 지키는 300년 넘은 곰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제주도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귤이 자생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진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섬에 본격적으로 과원을 조성했다. 이수동 목사는 1526년(중종 21) 이후 제주도 5군데 방호소에 과원을 조성하고 병졸들로 하여금 관리하게 했다.

조정이 요구하는 귤 진상품의 양은 점점 증가했고 그에 부응하는 과정에 과원 수는 점점 증가했다. 1653년 이원진 목사가 작성한 『탐라지(耽羅誌)』에는 당시 제주에 37군데 과원이 소개됐다. 그 가운데 정의현에는 정자과원(성산읍 수산2리), 독자과원(성산읍 난산리), 별과원(표선면 정의현청 동헌), 우전과원(남원읍 신례리), 금물과원(남원읍 하례리) 등 여섯 군데가 있었다. 정의현 여섯 군데 과원 가운데 현재 형식이라도 남아있는 것은 금물과원이 유일하다.


▲ 비가 쏟아져도 순례자등은 귀를 기울여 설명을 듣고 메모를 했다.

순례자들이 처음 찾은 것은 오래된 곰솔나무, 표지판에는 ‘금물나무 지킴이 나무’라고 기록됐다. 조선 숙종 시절에 금물과원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 여러 그루를 심었는데 소나무 대부분은 벌목되어 사라졌고, 한 그루만 남았다는 내용이다. 수령이 약 360년이라니, 제주도 마을에 남아 이는 소나무 중에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정세호 박사는 “소나무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 적송만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적송, 곰솔, 반송을 포함한다.”라며 “우리 조상은 소나무를 절개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가난한 시절에는 소나무 껍질을 먹고 연명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나무 뿌리에는 복령이, 그 위에는 송이버섯이, 줄기에는 송진이 나기 때문에 버릴 것이 없다. 특히 목재는 단단해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일본이 삼나무로 만든 안택선을 쳐부순 게 대표적인 예다.”라고 설명했다.

정세호 박사는 곰솔은 제주도와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산천단에 천연기념물 제 160호(1964)로 지정된 곰솔이 있는데 그 이전에 지정된 동홍동 곰솔이 있었다는 것. 서귀포시 동홍동에 일제강점기에 천연기념물 제 106호 지정된 수령 400년 곰솔이 있었는데, 사라호 태풍(1959년)에 부러져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곰솔을 소재로 세한도를 그려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았다는 것.


▲ 정세호 박사가 순례자들에게 나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사진=장태욱)

곰솔나무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금물과원과 재래 귤나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정세호 박사는 이곳에 과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인근에 조세진이 살았다고 한다. 주변에 영천관(1466년 건립)이 있는데, 영천관이 폐지되자 조세진은 지금 금물과원 자리에 여관을 열었다.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팔아 꽤나 돈을 벌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가 총포를 소지한 사실이 발각되어 재산이 몰수되고 패가망신하여 상효리로 이주했다. 훗날 지방 관아는 조세진이 주막을 운영하던 터에 금물과원을 조성했다.

정세호 박사는 탱자나무 대목에 귤나무를 접목해 대목을 생산하는 방법, 귤의 전래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조선시대 감목관을 지낸 제주도 경주김씨 일가가 총리대신 김홍집과의 인연을 통해 하귤을 들여오게 된 과정은 흥미를 끌었다.

제주시 노형동 주민 송언주 씨는 자연유산해설사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큰낭투어에 참가했다. 송 씨는 “큰낭투어인데 정세호 박사님은 나무뿐만 아니라 마을의 문화와 역사, 나무에 얽인 이야기를 잘 풀어준다.”라며 “여기서 해설을 듣고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고, 자연해설을 할 때 참고해서 가급적이면 다양하나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2025년 제주마을 큰낭투어’는 제주지역에 자생하는 큰 나무를 둘러보며 거기에 얽힌 사연을 이해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한 개 코스 씩 한 달에 4개 코스를 완주한다. 금물과원과 석주명 동백나무 등을 포함한 여정은 제 2코스에 포함됐다.

큰낭투어를 기획한 정세호 박사는 큰낭(고목)을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 귀중한 환경자산을 후세에 물려주는 게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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