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형 탐방로에 송악커튼·연못까지, 낮지만 명품오름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9) 넙게오름
낮은 오름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을 따라 간 오름은 별것 없는 듯한 곳이었다. 안내한 곳은 상수도급수장, 그곳을 지나 정상부를 오르는 길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1997년에 설치된 통신기지국으로 길이 쉽게 만들어진 것이다. 또 다른 2개의 탐방로가 있다. 능선에 ‘산(무덤)’이 있어서 후손들이 지나 다니는 길도 만들어져 있다. 다행히 겨울숲이라 길이 눈에 쉽게 보여 어렵지 않게 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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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도 기지국이 뚜렷이 보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넙게오름이다. 넙게오름은 낮은 오름이라고 무시하면 큰 오산이다. 제대로 된 탐방로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아마 느낄 수 없을 듯하다. 정상부는 하늘이 트였지만 키 큰 곰솔들이 시야를 가린다. 다행히 북서쪽으로는 주변 풍광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만큼 틈이 생겼다. 한라산 정상부도 시야에 들어온다. 까치발을 하고 서서 두 팔을 최대한 올리며 사진을 찍어본다. 그런데 언제 설치되었을까. 정상부의 운동기구와 휴식 공간은 이미 그 기능을 잃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62미터의 낮은 오름인데 생각보다 북쪽 탐방로는 경사가 급하다. 하지만 탐방객을 배려해 만들어 낸 둣, 나선형의 나무계단 탐방로길,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인상적인 모습이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사진으로 담아내려고 해도 그리 쉽지 않다.
한겨울 눈속에 매혹적인 열매를 달고 있는 자금우
이곳의 겨울 숲은 울창했던 덩굴줄기들이 시들어서 숲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곰솔과 억새가 무성하던 오름은 어느새 참식나무와 생달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들로 바뀌고 있고. 그 아래는 자금우가 넓게 차지하고 있다. 한겨울 눈 속에 자금우의 빨간 열매와 벌써 보슬보슬한 참식나무 새싹이 걷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끌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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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서리와 동리를 오고 갔던 오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고갯길, 그곳엔 넙게물이 있다. 조그마해 보이지만 그 주변으로 마을을 형성하여 그 물을 음용수로 썼다고 한다. 오름 주변에는 이렇게 이용했던 물이 세군데 있다고 한다. 어렵게 ‘뒷세물’이라는 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광서리마을지에는 기록이 없고 서광동리에 기록이 남아 있다. 두 마을 설촌은 같았을 텐데 행정구역상 나눠지다 보니 이런 역사 기록들이 분리되는 것이 아쉽다.
넙게오름은 한자로 광해악(廣蟹岳)이라고 불리면서 오름 지명 유래에 대해 많은 설들이 생겨났다.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넙’을 ‘넓은’으로 보고 ‘넓을 광’을 가져오고, ‘게’는 바다에 사는 ‘게’를 의미하는 ‘게 해’자를 가져다 쓴 것이 광해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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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게오름 지역을 옛날엔 자단리라고 해
그런데 넙게오름 지역인 서광서리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니 옛 이름이 자단리(현재의 서광리, 동광리, 광평리 일대)에서 광청리, 서광리로 바뀌면서 지금의 서광서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광리는 본래 자단이, 자단리(自丹里) 또는 광청이, 광쳉이(光淸里)라 불렀다고 한다. 18세기 중반에 동서로 분리되면서 광청이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서광리가 했다. 동광리 역시 자단리에 속했다가 19세기 후반에 광청리로 개명된 다음 1910년경 오늘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모학자의 해석에 몽골고어에 못 혹은 물통을 ‘ᄌᆞ다’라고 한다. 마을이름으로 불렸던 ᄌᆞ단리(自丹里)라는 말은 물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라고, 또한 넙게오름은 ‘광쳉이오름’이라고 부르는데, ‘광정이(廣井-)’에서 왔다고 한다. 우물이라는 뜻의 ‘광정(廣井)’은 점차 광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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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도 게 같지도 않은 넙게오름, 못이 있어 붙은 이름
넙데데한 산 모양이 넓적한 게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라며 불려진 넙게오름이다. 그 모양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어떻게 게를 연상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해석이다. 오히려 고어에서 오는 ‘넙’은 ‘널’에서 온 것, ‘널’은 얕은물을 가리키는 ‘노르’에서, 개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ᄀᆞᆯ’이 변하여 ‘ᄀᆞ’가 되고 이 말이 다시 ‘게’로 발음하면서 붙은 말이라고 하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의 넙게오름은 어쩌면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널개오름과 일치하는 이름일 것이다.
높지도 넓지도 않아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넙게오름! 그러나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정말 아름다운 오름이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못을 둘러싼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면 더 좋은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넙게오름(광쳉이오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산 943번지 일대
표고 246.5미터 자체높이 62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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