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취향 차이, 교묘하게 차별을 정당화한다
[북 리뷰] 피에르 부르디외·최종철의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새물결, 2006)
이문구가 자신의 친구를 모티브로 쓴 실명소설 『유자소전』에서 재벌총수의 운전사로 일하던 주인공 유자의 이야기는 계층 간 취향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재벌총수는 한 마리에 80만원이나 하는 비단잉어를 자택 연못에 떼로 풀어 놓는다. 어느 날 시멘트 독성 때문인지 비단잉어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다음날 빈 연못을 보며 총수가 잉어들을 잘 묻어주었느냐고 묻자 유자는 ‘술안주로 먹었는데요? 어떤 놈은 회로 뜨고 어떤 놈은 매운탕에 넣고.'라고 대답한다. 이에 잔뜩 화가 난 재벌총수는 화자인 ‘나’의 3년 치 월급에 맞먹는 비단잉어를 안주로 먹어치운 유자를 교통사고 처리부서로 좌천시킨다. 재벌총수에게 비단잉어는 과시와 사치를 만족시키는 취미의 대상이었지만 유자에게는 그저 푸짐한 안주거리에 불과했던 것인데, 유자에게는 그런 재벌총수가 위선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단잉어라는 똑같은 대상에 대한 재벌총수라는 상류층의 행위와 그의 운전사인 하류층 유자의 행위에 대한 인식차이는 서로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의 에피소드처럼 문화적 취향의 차이는 어쩌면 계층 간 차이의 확실한 증거일 수도 있겠다. 때로 이 차이는 서로 다른 취향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심지어 서로 다른 취향에 대한 불관용은 혐오와 차별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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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는 문화적 취향과 생활양식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계급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구조적 특징임을 밝힌다. 부르디외는 이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계급 간 불평등과 계급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50여년 전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부르디외가 분석한 프랑스 사회와는 다른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의 핵심 논의는 여전히 적실성을 가진다.
부르디외는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계급 분류에 따라 조사했는데 미적취향의 차이가 소비행위와 생활양식의 차별성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지배계급, 중간계급, 민중계급의 취향이 구분되며 계급적 취향의 차이가 현대사회에서 신분의 차이로 드러난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과거의 신분제는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지만 문화적 취향의 차이라는 형태로 신분의 위계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계급적 취향을 결정짓는 요인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비투스는 개인이 어린 시절부터 계급적 맥락 속에서 내면화한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계급의 구별짓기에 기여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다. 하지만, 그 콩과 팥을 어떻게 보살피고 키우느냐에 따라 수확량과 품질은 달라질 수 있다.
부르디외는 한 개인의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유무형의 ‘자본’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즉 경제자본(돈), 문화자본(지식, 교양, 취미, 학력), 사회자본(인맥), 상징자본(명성)이다. 이 네 가지 자본은 출신 배경에 따라 상속으로 주어지거나 본인의 노력에 의해 일부 획득되기도 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곧 불평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위 돈, 학벌, 인맥, 명성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불평등한 계층구조의 재생산과 영속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p.114
한국 사회에서 명품소비가 일상인, ‘강남’으로 상징되는 부유층의 소비문화는 그 자체로 계급적 차별성을 나타낸다.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비롯되는 지배계급의 취향은 필요와는 거리가 먼 사치취향으로 다른 계급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중간계급은 교육에 대한 투자와 미적 취향추구를 통해 신분상승의 욕망을 나타낸다. 민중계급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소비, ‘필요’에 의한 취향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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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소비패턴은 계급을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지표이며 취향은 계급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결국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분석틀로 제시하는 ‘취향’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자본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구별과 계급의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사회계급 성원들은 문화를 승인하는 정도보다는 문화를 인지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P.582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교육제도를 통한 문화자본의 전달은 기존의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매커니즘을 공고히 하여 지배질서를 더욱 강화한다. 즉, 부유한 경제 환경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담보함으로써 학력자본을 축적시켜 지배계급 지위를 획득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는 당연히 신분의 세습으로 연결된다. 교육과 문화자본 전승이 계급 간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주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강남 8학군 학교들의 2025년 SKY 대학진학률은 40%~25%에 이른다.
반면 경제적 환경에서 열악한 하류층 자녀들은 문화자본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제도 안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들은 낮은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기 어렵고 세대를 초월하여 불평등구조 속에 갇힌다. 조금 과하게 말한다면, 현대적 신분세습은 교육제도로 은폐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학교는 계급 중립적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구조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취향은 차별화 과정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획득된 성향이다. 취향은 ... 일종의 사회적 방향감각(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한 감각)으로 기능하며 사회 공간 내에 주어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의 재산에 알맞은 지위, 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실천이나 상품 쪽으로 인도한다.’-p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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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교육, 소비, 문화적 소비패턴이 어떻게 계층 간 구별짓기의 도구로 사용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부르디외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계층적 구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더 평등한 사회구조를 모색할 수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병욱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SBS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제주MBC에서 음악방송을 제작 진행했다. 지금은 제주농산물을 가공하는 중소기업을 운영 중이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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