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어올 것 같은 그 옛날 '루이비통’

[전시] 삶을 담아내는 구덕장인의 이야기

예전 제주도사라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구덕을 만들어 썼다. 용도에서는 육지의 바구니와 비슷한데, 제주도 구덕은 바닥이 직사각형과 비슷한 모양이다. 차롱은 만드는 방법에선 구덕과 비슷한데, 용도가 조금 다르다. 구덕은 물건을 운반하는데 사용됐고 차롱은 음식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오영희 구덕장의 구덕 전시 ‘삶을 담아내는 구덕장인의 이야기’가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서귀포치유의숲 방문자센터에서 열렸다.


▲ 오영희 구덕장인의 삶을 담은 전시회가 서귀포시 치유의숲 방문자센터에서 열렸다.(사진=장태욱)

26일에는 장인의 특별시연이 열렸는데, 일정에 쫓겨 시연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다. 대신 28일, 오후 전시장을 찾아 전시된 구덕을 눈으로 감상했다. 70년 장인의 손끝을 거쳐 태어난 구덕 10여 점이 마치 살아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구덕은 같은 대나무를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은 공통적인데, 쓰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이름도 제각각이다.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어서, 그 이름과 용도를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시를 통해서 예전 어른들이 사용하던 구덕을 되새길 수 있었다.


▲ 외쪽 위에서 시작해서 시게방향으로 곤대구덕, 촐구덕, 애기구덕, 질구덕(사진=장태욱)

곤대구덕은 여인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구덕으로, 외출 시에 들고 가는 구덕이다. 장에 갈 때, 이웃에 경조사에 갈 때, 당에 정성을 드리러 갈 때 들고 가는 구덕이다.

송일만 작가는 『어머니의 루이비통』(2020, 도서출판 맑은샘)에서 현대 여성들은 핸드백에 화장품이나 일상에 필요한 것들은 넣고 다니는데, 옛날 할머니, 어머니들은 구덕에 삶의 무게를 지고 다녔다고 했다.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어머니의 루이비통’도 곤대구덕을 지칭하는 것이다.

촐구덕은 해녀가 바당에 물질하러 갈 때 가지고 가는 구덕이다. 노동에 사용되는 구덕이기에 곤대구덕보다는 대나무 재료가 넓고 투박하다.

질구덕은 질빵을 달아 등에 ‘지는 구덕’이라고 질구덕이다. 물건을 져서 한꺼번에 많이 날라야 하므로 굵은 대나무로 투박하고 크게 만들었다. 해녀가 질구덕을 졌다면, 상군임을 의미한다.

물구덕은 허벅을 넣어 물을 길으러 다닐 때 사용했던 구덕이다. 물허벅의 높이를 감안해 구덕을 깊게 만들었다. 무거운 허벅을 지고 내리는 과정에서 바닥이 헤지지 않도록 왕대 조각을 붙여서 구덕을 받쳤다.


▲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물구덕, 양태구덕, 조레기, 얼맹이(사진=장태욱)


애기구덕, 이건 제주도식 요람이다. 애기를 넣어 흔들어 재웠던 구덕이다. 예전에는 밭일을 나갈 때도 애기구덕을 들고 갔다. 어머니가 일을 하는 동안 아기는 그늘 아래 구덕에서 잠을 잤다. 아기의 몸집을 반영해 좁고 길쭉하게 만들었다.

양태구덕은 양태를 만들 때 양태판을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됐다. 양태는 갓의 챙부분인데, 그걸 만드는 데도 구덕이 필요했다.

얼맹이는 물건을 나르거나 보관하는 용도가 아니라 일종의 체다. 대오리로 구멍이 크게 나도록 만들어 곡식을 쳐낼 수 있도록 했다.

조레기는 작은 촐구덕이라 보면 된다. 갯가에서 해조류룰 채취할 때 많이 사용했다. 어른들은 작업할 때 주로 허리에 찼다.

오영희 구덕장은 1941년 서귀포시 호근동 출신으로 여러서 형님으로부터 구덕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제주 전통방식으로 대나무를 이용해 구덕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그 기능을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4년에는 제주도 무형유산 구덕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서귀포시 치유의숲이 자리잡은 곳은 서귀포시 호근동에 속한다. 호근동에 구덕을 만드는 기술이 남아 있고 이를 계승하는 활동이 이어짐에 따라, 치유의숲은 2025년 웰니스 숲 힐링 축제를 기념해 구덕문화를 보전하는 일에 동참하고자 구덕전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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