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핑 도는 자리물회’ 그건 고향이다

[동네 맛집] 보목포구 돌하르방식당

지역 음식은 지역의 특산물과 기후, 그리고 문화적 취향을 반영한다. 애초에 식재료부터 다른 경우가 있고, 같은 재료라도 양념과 첨가물이 달라서 전혀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물회가 그 대표적이다. 지역에 따라 나는 어종이 다르고, 기본양념을 고추장을 쓰는 지역이 있고 된장을 쓰는 지역이 있다.

제주도에서 물회라고 하면 자리물회를 뜻하는데, 갓 잡은 자리돔을 뼈째 잘게 썰어서 식초를 더하고 오이나 양파 채와 함께 섞어서 된장으로 양념을 한다. 마지막으로 제피(초피) 잎을 따서 향을 더하면 비린 맛도 사라지고 식욕도 돋군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던 시절에도 제주도사람들은 시원한 자리물회 한 사발에 의지해 무더운 여름을 났다.


▲ 돌하르방식당 자리물회(사진=장태욱)

6월 마지막 주에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정 가운데 속초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모듬물회 한 그릇에 1만9000원인데, 오징어와 문어, 멍게, 흰살생선 등 내용물이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풍부했다. 기대에 부풀어 국물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고추장 양념에 단맛이 진한 국물. 익숙하지도 않고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집에 돌아오고 이틀 만에 자리물회를 먹었다. 자리물회가 한창 당기던 차에 운 좋게 고 사장님이 점심 한 턱 내는 자리에 끼게 되었다. 셋이서 보목포구로 갔다.


▲ 보목포구. 자리도을 잡는 배들이 이 포구로 들어와 연일 파시가 열린다. 마을 앞을 섶섬이 지키고 있다.(사진=장태욱)

우리지역에서 자리돔이라 하면 보목리 자리돔을 으뜸으로 치고, 자리물회도 보목포구 인근에서 즐겨 먹는다. 자리돔을 잡은 어부들이 보목포구로 들어오고, 거기에 연일 파시가 열린다. 그 싱싱한 자리돔을 포구 가까운 식당에서 먹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찾을 밖에.

보목포구에 인근에 자리물회를 파는 음식점이 많은데, 고 사장님 단골식당인 ‘돌하르방식당’으로 들어갔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인데, 80명쯤 수용할 만한 식당 안에 손님이 붐볐다.

자리물회 3인분을 주문했는데, 밑반찬과 함께 고등어구이 한 마리가 나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에서 기름기가 흐르는데, 물회가 나오기 전에 밥이 당겼다. 그리고 큰 양푼이에 물회가 가득 담겨 나왔는데, 황톳빛 자리돔, 황톳빛 된장 국물,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색깔이다.


▲ 황톳빛 자리물회. 제주도의 맛과 색깔이다.(사진=장태욱)

자리돔은 뼈째 나왔지만 잘게 썰었기에 씹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이와 양파를 잘게 썰어 넣었고, 초피를 넣은 후 참깨를 듬뿍 뿌렸다. 숟가락으로 국물과 건더기를 번갈아 먹었는데, 제주도의 자연을 다 담은 것 같은 맛이다. 눈이나 혀를 속이려는 기교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맛과 향, 교과서 같은 자리물회다.

떡을 보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있다. 북타임 임 대표님, 바로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소주를 빼고 자리물회를 먹으면, 진짜 자리물회를 먹은 게 아니라는 게 지론이란다. 그렇게 세 명이서 자리물회 양품이와 고등어 접시를 깨끗이 비웠고, 밥그릇과 술병도 싹 비웠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 적힌 오래된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천객만래(千客萬來)’, 천명 손님이 만 번씩 오길 바란다는 의미 같은데, 대단한 포부다.

보목포구 앞에서 바다를 보는데, 우뚝한 섶섬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보기만 해도 믿음직하다. 저 섬 물밑이 자리돔이 터를 잡고 알을 낳는 보금자리일 게다.

포구 한 켠에 이 마을이 낳은 시인 故 한기팔 선생의 시비가 서있다. 시비에 박힌 시 제목이 ‘자리물회’다.

‘자리물회나 줍서, 하면/ 눈물이 핑 도는/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한기팔 시인의 '자리물회' 일부

자리물회를 먹으면 떠오르는 생각, 한 시인이 일찍이 시로 적었구나. 자리물회로 여행에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았다.

돌하르방식당
서귀포시 보목포로 53, 010-733-9288
자리물회 1인분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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