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대를 가루로, 대기근 때 굶주린 백성의 마지막 음식
[주말엔 꽃] 옥수수 꽃
지난주 2박 3일 일정으로 강원도를 여행했다. 단체로 다니는 여행이라 관광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목가적 풍경은 소박하고 정겹다. 특히, 비탈진 농지에서 여름 햇살을 받고 커가는 옥수수를 보니, 진정 강원도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일요일 밤에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침 마당에 섰는데, 웅웅대는 소리, 벌 몇 마리가 날아들어 옥수수 꽃가루를 따고 있다. 옥수수 꽃이 핀 걸 사람보다 꿀벌이 먼저 안다. 강원도에서 봤던 옥수수인데, 집에서도 비슷하게 영글고 있다. 옥수수, 메밀, 조, 감자 등 먹고살려고 쌀 말고 다른 작물을 재배한 데서 강원도와 제주도는 많이도 닮았다. 토질이 척박해서 그럴 것이다.

옥수수는 잎이 길고 광합성능력이 뛰어나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는 작물이다. 비교적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데, 그 용도도 다양해 세계 3대 작물에 속할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재배된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물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고향이다. 유럽인들이 미대륙에 진출한 이후에야 유럽에 보급됐고, 이후 아시아로도 전해졌다.
학자들은 아메리카 사람들은 이미 7000년 전부터 옥수수를 재배한 사실을 밝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했을 당시에 현지인들은 200∼300종의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었다.

15세기 아메리카인들이 지금 우리처럼 넓은 경작지에 옥수수를 빼곡하게 재배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당시에 아메리카대륙에는 소와 말 같은 가축도, 철제 농기구도 없었다. 쟁기로 밭을 가는 건 불가능했고, 큰 나무를 불태운 후 그루터기 둘레에 옥수수 씨앗과 콩 씨앗, 호박 씨앗 등을 심어서 혼작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콩 넝쿨이 옥수수 줄기를 타고 오르고, 호박 넝쿨은 밭에서 마음대로 뻗어갔다. 같은 장소에 여러 작물을 재배하며 생산량을 높였던 것이다.
영국인 존 제라드(John Gerard, 1545 ∼ 1612)는 이발사 겸 외과 의사였는데 수집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그는 런던 홀본에 있는 자신의 별장 근처에 정원을 가꾸고 정원에 있는 1000여 종의 목록을 책으로 출간했다. 제목이 『허벌(Herball)』 인데, 이는 최초의 식물 목록이다.

『허벌(Herball)』에는 옥수수도 들어있는데, 이름을 ‘터키 밀(Turkie wheat)이라고 표기했다. 현대 영국인들은 옥수수를 ’메이즈(maize)‘라 부르는데, 당시에는 달리 불렸던 모양이다.
옥수수는 16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사람들을 통해 중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그 이후에 도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수수는 현종 12년(1671)에 들어서 우리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12년 4월 1일 기사에 사간 심유(沈攸), 헌납 박지(朴贄), 정언 강석창(姜碩昌) 등이 임금에 간청하는 내용이다.
"올해 기근의 참혹은 팔도가 다 같습니다만 함경도 육진(六鎭)이 더욱 심하여, 심지어는 옥수수대를 가루로 만들어 푸성귀 음식에다 섞어 먹으면서 조석에 달린 목숨을 잠시나마 이어 가고 있으니, 열흘을 넘지 못하고 장차 구덩이로 굴러 죽을 것입니다. 육진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각별히 어루만져 돌보아 국가의 은혜로운 뜻을 보이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 어사를 보내어 변방 백성을 위로하여 타이르게 하고 이어서 편리할 대로 일을 보게 하여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진구해 몹시 급한 것을 구제하게 하소서."
먹을 게 없는 백성들이 옥수수대를 갈아서 채소와 섞어서 끼니로 연명하고 있으니 조정이 나서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1670년(경술)과 1671년(신해)에 걸쳐 발생한 경신대기근(庚戌辛亥大飢饉)의 참상을 짐작하게 하는 기사다. 1670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떨어졌고 병충해가 창궐하여 식량생산량이 생산량의 급격한 줄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번져서 두 해 동안 조선에서 굶주리거나 병들어 사망한 자가 100만에 이른다고 전한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이 먹고사는 건 국가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민생이 위태로울 때 조정에게 방치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신하의 간청에 옥수수의 이름이 등장한다.

옥수수는 피는 시기에 따라 꽃피는 시기가 다른데, 보통 6월에서 7월 사이에 핀다. 옥수수의 꽃은 자웅이화(雌雄異花), 즉 암수가 따로 핀다. 옥수수 한 그루에 수꽃은 꼭대기에 수수처럼 피고, 암꽃은 잎겨드랑이에 죽순처럼 돋는다. 죽순처럼 생긴 암꽃이 자라서 옥수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옥수수수염이 밖으로 나온 것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나온 암술대에 해당한다.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으면 수분이 옥수수수염의 색깔이 갈색으로 변한다. 수분이 이뤄진 것인데, 옥수수 알갱이가 커간다.
옥수수에는 단백질, 당질. 섬유질이 고르게 들어있고, 비타민E도 풍부하다. 게다가 옥수수는 여름 햇살을 듬뿍 받고 자란 식물이어서. 달여 차로마시면 겨울철 건강을 유지하는데 좋다고 한다.
마당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여름햇살, 옥수수에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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