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님을 좇는 저녁노을처럼 붉은 절규
[주말엔 꽃] 교회 마당에 피어난 제주 상사화
일요일 아침,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가 한 차례 내렸다. 이 비로 여름이 가실 리는 없지만, 잠시나마 무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대지에 자리는 나무와 풀꽃도 비가 반가웠을 게다.
오전 예배가 끝나고 교회 마당을 나서는데, 여태 보지 못했던 꽃이 밝은 빛을 발한다. 짙은 노란색 꽃이 물방울을 머금은 모습이 싱그럽기까지 했다. 언뜻 보면 나리꽃을 닮았는데, 나리보다는 키가 작고 꽃에 점무늬도 없다. 꽃이 줄기 끝에 방사형으로 핀 것을 보니, 제주 상사화다.
제주 상사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자생한다. 제주도에는 해발 300m 이하 방목지대나 오름 주변의 계곡이나 물이 고여 있는 지역 인근의 풀밭에서 자란다. 자생지가 많지 않고, 자생지 별 개체수도 적은 않은 편이다.
야생에서 자생하는 게 교회마당에 꽃을 피웠다면 누군가 심었을 텐데, 심었다는 사람이 없다. 그저 작년까지 보이지 않았는데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한 번의 치솟음을 위하여/ 악착같은 발기(勃起)// 이 늦은 사랑을 위하여/ 꽃대를 올려 보았느냐// 나는 일몰 같은/ 붉은 북을 두드린다./ 제주 상사화(相思花) 밭에서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왔다가 여름에 잎이 시들고 나면, 꽃대를 올린다.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기까지 시간이 짧기 때문에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 마치 떠나간 사랑을 붙잡기 위해 서두른 것 같다.
그런데 그 서두름이 결말은 허망하다. 잎이 자랄 때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필 때는 잎이 떨어진 뒤이기 때문에 잎과 꽃은 서로 만날 일이 없다.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할 운명이다. 그런 의미로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애절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붙이지 못하는 이름이다. 시인은 상사화가 피는 모습을 ‘일몰 같은 북’이라고 했다. 해 지기 직전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도 결국 어둠에 떨어질 운명이니. 모든 게 잠시의 절규일 뿐이다.
제주 상사화에서 이른 봄 난초 같은 잎이 나오는데, 잎은 길이는 50센티까지 자란 후 6~7월이 되면 사라진다. 그리고 잎이 말라 없어진 후 8월에 꽃대를 길게 세우고, 꽃줄기 끝에 황적색 꽃을 방사형으로 피운다. 꽃은 줄기 끝에 5~8개씩 핀다. 꽃부리는 6개의 화피열편으로 갈라져서, 각기 길이 6센티미터까지 자란다. 백합처럼 화피의 끝이 약간 뒤로 젖혀진다.
꽃에는 6개의 붉은색 수술과 1개의 암술대가 있다. 암술대와 수술대 모두 황적색인데, 암술대가 수술대에 비해 길고 암술머리는 붉은색의 젖꼭지 모양 돌기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제주 상사화는 보기에도 좋지만 다양한 약리적성분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력이 있다고 알려진 리코린(lycorine) 함량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제주상사화 구근에서 분리된 성분인 7-데옥시-트랜스나르시클라신 (7-Deoxy-transnarciclasine)은 염증 억제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상사화는 종자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구근을 통해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 마당에 구근을 심었다는 사람이 없는데, 네그루가 인접해서 꽃을 피웠다.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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